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선거 공신 챙기기’와 ‘제 식구 감싸기’에 마침표를 찍기로 독하게 마음먹은 모양이다. 경남도 출자 출연기관을 비롯한 산하기관장 인선 과정에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여기다 객관성을 곁들인 검증 시스템도 내놨다.
홍 지사는 이달 8일 도의회의 반대에도 임용을 강행했던 강모택 람사르환경재단 대표이사가 열흘 뒤 사직서를 제출하자 곧바로 수리했다. 비록 자신이 추천한 고향 후배이지만 업무를 수행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에 과감히 자른 것.
또 자신의 선대본부장을 지낸 박판도 도립 거창대 총장 후보자(전 경남도의회 의장)의 내정을 25일 전격 철회했다. 자체 검증 과정에서 일부 흠결이 드러났다는 이유에서다. 홍 지사 취임 직후 도립 남해대 총장과 정무직을 뽑을 당시 보기 어려웠던 조치들이다.
이는 산하기관장을 대충대충 임용하다가는 정치적 부담이 심각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야권 도의원들로 구성된 ‘민주개혁연대’, 시민사회단체와 언론은 최근 한목소리로 홍 지사를 비판했다. 도의회와 약속했던 산하기관장 인사검증(기관장 임용 전 의견청취)을 폐기한다고 14일 선언했기 때문. 그는 “인사검증은 (도의회 대신) 도민들로부터 직접 받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개혁연대는 “사전검증이 어렵다면 사후검증 조례라도 만들겠다”며 긴급 좌담회를 개최하는 등 홍 지사를 향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장고를 거듭하던 홍 지사는 26일 ‘출자 출연기관장 임용 전 도민 의견 수렴 계획’을 발표했다. 2단계에 걸쳐 내·외부 검증을 받는 내용이다. 1단계는 지원서를 접수한 뒤 기관장 추천위원회(이사회)를 거쳐 담당부서와 감사관실이 5일 동안 내부검증을 한다. 2단계는 경남도 홈페이지에 임용 예정자의 자기소개서와 기관운영계획서를 올려 5일 동안 도민 의견을 두루 듣기로 했다. ‘깨알 검증’을 통과해야 임용이 이뤄진다. 검증 대상은 경남개발공사와 경남발전연구원 등 11개 출자 출연기관장이다. 도립전문대 등 지원기관의 대표도 내부 검증은 거친다.
한 차례 시행 이후 도의회 청문 절차가 폐기된 것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광역단체장이 출자 출연기관장을 ‘엄선’하겠다며 기준을 마련한 것은 진일보한 선택이다. 홍 지사가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나의 말을 살린 뒤 남의 돌을 잡으러 간다는 바둑 격언)’ 전략을 쓴다고 보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제비 한 마리 날아왔다고 봄이라 하기엔 그렇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홍 지사의 ‘몸부림’에 대한 진정성 여부는 곧 이어질 산하기관장 인사에서 판가름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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