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렇게 잔인할 수 있었을까… 영화 ‘남영동’보며 내가 미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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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기술자 이근안 회고록 내… 여전히 자신을 ‘애국자’ 표현

“영화 ‘남영동 1985’를 관람하면서 참으로 괴로웠다. 저렇게 잔인할 수 있었을까? 내가 보아도 내가 미웠다. 그때는 사상범을 잡는 게 애국이고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다.”

군사정권 시절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 씨(74)는 13일 발간한 자칭 회고록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에서 ‘남영동 1985’를 본 소감을 밝히며 서문을 시작했다. 이 씨는 영화가 개봉한 22일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고 한다. 책에는 이 씨의 일방적인 주장이며 그동안 알려졌던 내용과 다른, 진위를 알기 어려운 주장도 적지 않다.

이 씨는 고 김근태 민주당 전 상임고문을 전기 고문했던 내용을 자세히 서술했다. “김O태를 칠성판(피의자 고문 용도로 사용되는 나무판)에 묶으면서도 자신이 없다. 12일간 묵비권으로 버텼는데 이걸로 될까. 눈을 가리고 소금물을 발가락에 붓고 배터리를 대는데 1시간 전부터 ‘전기로 지져버리겠다’고 겁을 준 뒤 시행하니 효과적이었다.”

이 씨는 “영화에선 220V 정도의 자동차 배터리로 고문한 것처럼 나오는데 내가 사용한 것은 면도기에 들어가는 (소형) 1.5V 건전지였다. 진한 소금물에 담근 붕대를 발에 묶어 전류를 통하게 하면 손이 떨릴 정도로 강해진다”라고 밝혔다.

이 씨는 고문죄로 수감생활을 하던 중 보건복지부 장관이 된 김 전 고문을 감옥에서 재회한 일화도 기술했다. “변호사 접견실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김근태 장관만 불쑥 들어왔다. 내가 ‘오랜만입니다. 그간 죄송합니다’라고 인사하자 김 장관은 ‘시대가 만든 죄악이지’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이 양반 그릇이 큰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이 씨는 경기경찰청 대공분실장이던 1988년 12월 고문 경찰관의 표본이 돼 경찰의 추적 대상이 되자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고 썼다. “사상범은 민주화 인사로 탈바꿈해 보상금까지 받는데 나는 죽도록 충성을 다했건만 토사구팽이라니…. 애국도 시대를 잘 만나야 한다. 공산당 잡는 일은 영원한 애국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일할 때만 애국이니 국가보위나 하지 이제는 씹다 버린 껌의 신세가 아닌가”라는 등 과연 이 씨가 자신의 죄과를 뉘우치고 있는가 의심이 드는 대목도 적지 않다. 이 씨는 14일 서울 성동구의 한 음식점에서 출판기념회를 연다.

김준일·박희창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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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1985#이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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