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 씨(37)는 구청 대강당에서 열리는 ‘광나루 아카데미’ 프로그램에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 시인의 특강이 마련된다는 소식을 최근 알게 됐다. 평소 김 시인의 시를 좋아했던 터라 짬을 내 강연을 들어보겠다는 생각에 설렜지만 강의 시간을 보고는 화만 났다. 강연은 목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열렸던 것. 이 씨는 “나도 똑같이 세금 내고 광진구에 사는 주민인데 구에서 마련한 좋은 강좌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다”며 “직장인을 위해 이처럼 좋은 강의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각 구청에선 문화센터나 평생학습관을 통해 다양한 취미·예술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인문학 다시보기’ 바람이 불면서 광진구처럼 인문학 강좌를 운영하는 곳도 상당수다. 저렴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인기가 많다. 하지만 새벽이나 밤 시간대에도 강좌가 열리는 단전호흡 댄스스포츠 요가 같은 체육 프로그램을 제외하곤 대부분 평일 근무시간에 이뤄져 직장인은 아무리 듣고 싶어도 참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구 문화센터는 누구를 위한 곳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실제 강남의 한 구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의 성인 대상 문화강좌 45개 중 직장인이 들을 수 있는 시간대(평일 오후 7시 이후)에 열리는 것은 6개뿐이었다. 강북의 한 구 문화회관 성인강좌 중에는 직장인이 들을 수 있는 시간대 강좌가 108개 중 11개로 10%밖에 되지 않았다.
유아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역시 대부분 평일 오후에 이뤄져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맞벌이 부부들은 접근하기 힘들다. 대부분 유아 강좌는 부모가 수업에 함께 참여해야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문화센터까지 아이 혼자 오갈 수 없기 때문이다. 3세 딸을 키우는 직장인 송모 씨(34·여)는 “구청은 물론 민간 기관들이 하는 유아 대상 강좌들이 거의 평일 오후에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 같은 맞벌이 부부에겐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구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나 평생학습관 등은 야간이나 주말에는 시설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평일 일과시간대에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한 구청 담당자는 “다른 시설이 모두 문을 닫는 평일 저녁에 구청 대강당에서 직장인을 위한 강좌를 하려면 냉난방시설 가동 문제부터 강당 출입문제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며 “직장인을 대상으로 강좌를 열고 싶어도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청 관계자는 “문화센터 강좌 수강생 대부분이 전업주부나 은퇴한 장년층”이라며 “직장인도 참여할 수 있도록 강좌 시간을 변경해봤더니 오히려 고정 수강생들만 떨어져 나가더라”고 말했다.
서울시에서도 구청이 운영하는 문화센터 등의 강좌에 직장인들의 참여도를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평생교육이란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직장인들이 소외되고 있어 이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논의 중이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일부 구청에선 직장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별도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서초구민회관에선 ‘직장인을 위한 손님 초대요리’ ‘아버지 요리교실’ 같은 직장인 대상 이색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중구문화원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화요일 저녁 7시부터 성악노래교실을, 목요일 오후 7시 30분부터 누드크로키 수업을 하고 있다. 성동구민대학에도 평일 저녁 바이올린이나 기타, 색소폰 피아노 교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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