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뒤로 낙태 미루다… 여고생 수술중에 숨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4일 03시 00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임신중절을 미뤄온 고3 수험생이 수능을 마친 직후 서울의 한 병원에서 낙태수술을 받다가 숨졌다.

13일 서울 광진경찰서 등에 따르면 10일 오후 2시경 서울 광진구 화양동 Y여성의원에서 임신 23주차인 A 양(18)이 낙태수술을 받던 도중 의식을 잃고 심장박동이 불안정해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과다 출혈 등으로 사망했다. 수술 당시 함께 의원에 갔던 A 양의 부모는 “오후 2시경 수술을 시작해 6시경 딸을 대학병원으로 급히 옮길 때까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병원이 제대로 조치만 했어도 아이가 죽진 않았을 것”이라며 의료사고라고 주장했다. 수술을 집도한 원장 이모 씨는 유족과의 연락을 일절 끊은 채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는 상태다.

유족에 따르면 A 양은 8일 수능 당일까지 부모에게 임신 사실을 숨겼다. A 양 부모는 “딸이 서울의 중위권 대학에 수시지원을 할 정도로 성적이 우수한 편이었다”며 “학교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던 아이가 혼자서 임신 사실을 숨기며 겪었을 마음고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유족 관계자는 “(A 양이) 편한 옷을 입고 다니며 학교나 가족에게도 임신 사실을 완전히 숨겼다”며 “수능 직전 부모가 딸의 가슴이 커지는 등 체형이 변한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시험 스트레스로 살이 찐 것으로 보고 캐묻지 않았다”고 했다.

A 양은 수능을 마치고 어머니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았고 부모는 인터넷으로 비밀 상담이 가능한 병원을 검색한 뒤 수능 다음 날인 9일 딸과 함께 Y여성의원을 찾아 상담을 받았다. A 양이 임신 23주차가 될 때까지 임신중절을 미룬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수능을 앞두고 성적에 미칠 악영향 등에 대한 심적 부담감 때문에 수술 시기를 미뤄왔을 가능성이 있다.

A 양 부모는 “의사가 초음파검사를 하더니 ‘태아의 목이 정상 태아보다 두 배 이상 두꺼워 장애아 같다’고 했다”며 “6개월 된 태아도 수술한 경험이 두 번 이상 있고 그 환자들도 건강히 지낸다는 말을 해 믿고 수술을 맡겼다”고 주장했다.

원장 이 씨가 작성한 A 양의 진료서류에는 ‘10월 중순경 타 병원에서 태아가 다운증후군 진단 받았음.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지만 딸을 위해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음’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유족들은 “이 병원에서 처음으로 진료를 받았고 기형아 진단은 이 씨가 한 것”이라면서 “(A 양이) 성폭행을 당한 적이 없으며 상담 당시 성폭행 관련 내용을 언급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상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이나 태아가 기형일 경우에는 임신 24주 이내에 한해 제한적으로 낙태가 허용된다.

A 양이 수술을 받은 Y의원은 대학가에 위치해 주로 20, 30대 여성을 대상으로 여성질환 검진이나 피부미용 비만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개인병원으로 알려져 있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골격이 형성된 23주 된 태아는 분만을 유도해 낙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수술이 까다롭다”며 “분만 전문 병원이 아닌 곳에선 산모가 사망할 수 있는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부검을 실시해 A 양이 과다 출혈로 숨진 사실을 확인하고 곧 원장 이 씨를 소환해 불법 낙태수술 여부와 사망 경위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채널A 영상] 고3 여학생 낙태수술중 사망…수능 2일만에 무슨 일이?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여고생#낙태#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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