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방관에… 청주 피살女도 ‘발묶인 전자발찌 소급’의 희생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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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급대상인 용의자 곽광섭 작년 착용 청구 기각

법원이 성범죄 전과자들을 방치한 사이 또 한 여성이 쓰러졌다.

충북 청주시에서 일어난 여성 성폭행 살해사건의 피의자 곽광섭(45)은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였지만 검찰의 청구를 법원이 번번이 무시했던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그에게 제때 전자발찌를 채웠다면 억울한 희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법원이 재범 방치한 셈

지난해 5월 24일.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곽광섭에게 전자발찌 착용 명령을 내려 달라고 법원에 청구했다. 검찰은 그가 2004년 수차례 친딸을 성폭행하고 내연녀의 딸을 강제 추행한 죄로 5년 복역한 뒤 2009년 출소했지만 전자발찌 착용 명령을 받지 않았다는 데 주목했다. 전자발찌 제도가 시행된 2008년 9월 이전의 일이라 착용 명령을 받지 않았지만 2010년 7월 소급이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친딸을 범한 곽광섭에게 전자발찌를 소급 적용해 달라고 법원에 청구한 것이다.

하지만 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부(부장판사 이영숙)는 석 달 뒤인 지난해 8월 17일 청구를 기각했다. 기각사유서엔 “재범 위험을 단정할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법원은 △출소 이후 부모와 함께 살며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열심히 일한 점 △교도소 생활을 하며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이용사 자격을 딴 점 △2004년 사건 이전까지 성폭행 전과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안종렬 대구지법 공보판사는 1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성도착증 같은 이상 증세를 증명할 정신과 의사 소견이 없었다”며 “죗값을 치르고 성실하게 사는 이에게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내리는 것은 가혹한 이중처벌”이라고 말했다. 당시 청구를 심사한 뒤 기각한 장재원 주임판사는 “공식 답변은 할 수 없다”며 통화를 거부했다.

검찰은 답답했다. 열다섯 살 된 친딸을 범할 정도로 비뚤어진 성욕을 가진 그가 성도착 기질을 다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성폭행 전력은 없어도 폭행 등 전과가 9개에 달했다. 친딸을 성폭행했을 때마다 만취 상태였다는 점도 주의 깊게 봤다. 평소 성실히 생활하다가도 술에 취하면 재범할 우려가 높은 성향이었기 때문이다. 곽광섭의 내연녀에 따르면 곽광섭은 이번 범행 때도 술에 취해 있었다.

대구지검 서부지청 관계자는 “곽 씨에게 성적 문제가 있고 재범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할 근거는 충분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법원 결정에 불복해 곧바로 항고했지만 재판은 1년이 지난 현재까지 법원에 묶여 있다.

대구고법 형사부(부장판사 유해용)는 검찰의 항고를 받은 지 1년이 지나도록 곽광섭에게 전자발찌를 채울지 판단을 미루고 있다. 청주지법 충주지원이 2010년 8월 전자발찌 소급 적용을 두고 헌법재판소에 제청한 위헌심판의 결론을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다.

○ 전자발찌 미루는 사이 3명 숨져

전자발찌 소급 적용 보류의 문제점을 지적한 본보 8월 23일자 A1면.
전자발찌 소급 적용 보류의 문제점을 지적한 본보 8월 23일자 A1면.
위헌 결정이 나기 전까진 현행법에 따라 판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법원도 “전자발찌 소급 적용이 적법하다”고 3건의 재판에서 일관되게 판결했다. 하지만 곽광섭 사건 때 대구고법이 그랬듯 상당수 법원은 헌재 판단을 지켜보겠다며 성범죄 전과자들을 방치한 채 허송세월하고 있다. 서울 한 지방법원 판사는 “나중에 위헌 결정이 나면 소급 적용된 전과자들을 모조리 재심해 전자발찌를 풀어줘야 하는데 이는 판사들에게 큰 부담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위헌 제청이 헌재에 걸려 있지만 판사가 적극적으로 결정을 내려 전자발찌가 소급 적용된 성범죄자도 391명에 달한다. 전자발찌의 재범 억제력을 높게 본 판사들이 헌재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현행법 규정에 따라 판단한 결과다.

만약 대구지법 서부지청이 곽광섭의 재범 위험성을 정확히 판단했다면, 대구고법이 원칙에 따라 현행법을 적용했다면 이번 사건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은 재범 위험이 높은 성범죄자를 선별해 전자발찌 소급 적용을 2675건 청구했다. 법원은 그중 15.9%인 424건만 받아들였다. 231건은 기각됐고 나머지 2019건은 계류 중이다. 이처럼 법원에서 판단을 미루는 사이 전자발찌 없이 지내다 다시 흉악범으로 돌변한 전과자에게 숨진 피해자는 알려진 것만 3명이다. 이들에게 성폭행당한 미성년자는 6명이다. 이렇게 재범한 전과자는 지난해 10월까지 집계한 것만 19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1일 경기 수원시에서 1명을 살해하고 4명을 다치게 한 강모 씨(39)는 특수강간으로 7년 복역한 소급 적용 대상자였다. 지난해 3월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던 7세 소녀를 추행한 양모 씨(51)는 이전에도 세 차례나 아동들을 강간하려 했던 전과자다. 이들 발목에는 전자발찌가 없었다.

14일 재판관 9석 중 절반을 넘는 5석이 빈 채로 남게 된 헌법재판소에 빠른 결정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다.

이영란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성범죄 피해가 늘어나는 현실을 고려해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DNA 일치’ 확인… 경찰, 이웃집 용의자 곽광섭 공개수배 ▼

청주 성폭행 살해 용의자 곽광섭.
청주 성폭행 살해 용의자 곽광섭.
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성폭행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피해자 A 씨(25)의 몸에서 채취한 체액의 유전자(DNA) 검사 결과 곽광섭(45)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14일 공개수사에 나섰다.

▶본보 14일자 A10면 ‘옆집 남자는 친딸 성폭행 전과자’…

청주상당경찰서는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A 씨의 몸에서 나온 체액과 타액 등이 국과수에서 보관 중인 곽광섭의 DNA와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곽광섭을 피의자로 확정하고 그의 최근 사진 등이 담긴 수배 전단을 만들어 배포했다.

신연식 상당서 수사과장은 “도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추가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어 공개수사로 전환했다”며 제보를 당부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청주 성폭행#곽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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