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미수범이 학원 차려 버젓이 女중고생들 상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성범죄자 관리 곳곳 구멍
어머니 명의 빌려 등록 ‘성인학원’ 이유로 감독 제외… 실제론 14세 여중생도 다녀

25일 오후 경기 수원시의 한 상가에 있는 △△컴퓨터학원. 방학을 맞아 자격증을 따려는 앳된 얼굴의 남녀 청소년 서너 명이 상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과 면담 중인 이 학원 직원 3명 중에는 A 씨(35)도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김○○’라는 가명을 쓰고 있다.

흰색 셔츠에 정장바지 차림을 한 ‘김○○’ 씨는 청소년 강간미수범이다. 지난해 3월 한 여중생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부의 성범죄자 신상공개 사이트인 ‘성범죄자 알림e’에는 그의 실제 이름과 얼굴이 등록돼 있다. 하지만 이 학원 수강생 중에 실장 직함을 갖고 있는 그가 성범죄 전과자라는 것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학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A 씨는 올 2월 어머니 명의로 학원을 인수해 운영하는 사실상 원장이다. 고용노동부가 3월 이 학원에 시설 점검을 나왔을 때 그는 원장 자격으로 점검표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엔 수강생 상담업무도 하는데 여자 중고교생이 적지 않게 찾아온다.

A 씨가 미성년자 성범죄 전력을 숨긴 채 자유롭게 10대 수강생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이 학원이 성범죄자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성범죄로 형이 확정된 자는 형 집행 후 10년 동안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학원에 취업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해 청소년 이용 시설 종사자 131만여 명의 범죄경력을 확인해 학원강사나 어린이집 원장 등 성범죄자 46명을 적발했다.

하지만 A 씨의 학원은 ‘평생직업교육학원’으로 분류돼 성범죄자 취업 제한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정부는 ‘성인 수강생이 주로 찾는 곳’이란 이유로 감시 대상에서 뺐다. 그런데 현행 학원법상 평생직업교육학원에는 웅변 주산 연기 서예 만화 바둑학원 등 청소년들이 많이 다니는 학원이 다수 포함돼 있다. △△컴퓨터학원 수강생 250명 중에도 14세 여중생을 포함해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가 8명 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이 다니는 학원 중 상당수가 평생직업교육학원으로 분류돼 있으므로 성범죄자 취업 제한 대상에 평생직업교육학원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반학원도 성범죄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A 씨처럼 타인 명의로 학원을 차린 뒤 실장 등의 직함으로 청소년들을 직접 상대할 경우 학부모나 학생들이 이를 알아채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상정보가 공개된 성범죄자라 해도 영어 이름 등 가명을 쓰면 그의 정체를 알아채는 건 어렵다. ‘성범죄자 알림e’에 등록된 성범죄자의 거주지 동(洞)과 학원 소재지가 대부분 달라 수강생들이 강사의 성범죄 전력을 파악하기 힘든 것도 문제다. A 씨의 경우도 학원은 경기 수원에 있지만 등록된 거주지는 서울이다. 현행법상 일반학원은 강사 채용 때 범죄경력 조회를 해야 하지만 성범죄자가 가족 등 다른 사람 이름으로 학원을 차리면 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신상공개 때 성범죄자의 근무지를 명시하고 직장을 옮길 때마다 갱신해야 한다”며 “학부모들은 학원의 실제 운영자 이름이 대외적으로 공개된 원장 이름과 다르면 해당 운영자가 성범죄자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동아일보가 25일 A 씨에 대한 취재에 들어가자 수원시교육지원청은 이날 오후 이 학원에 단속반을 보냈다.

한편 성범죄 처벌 강도가 높아졌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성범죄자는 오히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이 발간한 ‘2010년 양형위원회 연간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7월 이후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자 152명 중 83명(54.6%)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채널A 영상]김길태 300m, 김수철 420m, 조두순 750m…이번엔 250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황성혜 인턴기자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과정  
#성범죄자 관리#학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