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 다가오면 한국사회는 이른바 ‘연예인 대학생’을 놓고 공방이 벌어진다. 이 시기가 되면 ‘A연예인이나 B스포츠스타가 ○○명문대에 특례입학한다’는 연예뉴스가 유독 많아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인기 걸그룹 f(x)의 멤버 루나(19)가 중앙대 예술대학 공연영상창작학부 연극전공에 합격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입학 소식이 알려지자 “수험생 화나게 하지 마라” “뒷문으로 대학 가다니, 비호감으로 변했다”며 루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반면 “공부 외의 재능도 인정해야 한다”는 반박도 나왔다. 지난달에는 고려대 체육특기자전형으로 입학한 김연아 선수(22)에 대해 황상민 연세대 교수가 “학교 수업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고등학교에 교생 실습을 나간 건 ‘쇼’”라고 주장하면서 또다시 특례입학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연예인 특례입학에 대한 전문가, 대학생, 연예인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 ■ 이래서 찬성한다
찬성 측 전문가들은 연예인들의 재능도 대입 전형에서 평가받아야 하는 수험생의 특기 중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쳐 노래나 연기 등에서 전문성을 갖춘 연예인들에게 학업의 기회를 주는 것도 교육기관인 대학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의 충실한 대학생활이 학교 홍보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한다. ○ “연예인 전문성도 대입에서 평가받아야”
김경회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수학능력시험 하나뿐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학업 외의 방식으로 학생의 자질을 평가하는 대입 전형은 증가하는 추세다. 입학사정관전형으로 선발되는 학생은 지난해 4만2163명에서 올해 4만3138명으로 확대되며, 이는 전체 대학 입학 정원의 11.5%에 해당한다.
서울 소재 주요 대학의 한 관계자는 “연기자뿐 아니라 예체능 특기자를 특기자전형으로 함께 선발하고 있지만 유독 연기자들만 특례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형의 경우 체육 일부 전공에서 단체 성적을 반영하는 것을 빼면 나머지는 개인 수상 실적 80%와 적성면접 20% 비중으로 선발한다. 연기 전공의 경우 특성상 연예인이 많이 지원한다. 연기 경력과 수상 실적 등이 쌓여 있는 연예인들이 특기자전형으로 지원하는 비율이 커 합격률도 높은 편이다. 이 대학 측은 “‘공부도 안 한 연예인들이 쉽게 대학을 간다’는 비판은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무시한 편견이다”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행정학과 4학년 김빈 씨는 “다양한 인재를 뽑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대학의 역할 중 하나”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또 다른 학생은 “대학이 수능 외에도 다양한 전형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게 여기면서도 막상 연예인들의 입학을 반대한다면 특정 직업군에 대한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대봉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활동하던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연예인들이 관련 전공에 입학하는 것을 모두 특혜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며 “연예인들이 자신의 분야와 관련된 학과에서 공부할 기회를 갖고 더욱 성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특례입학, 일반 응시자의 기회 박탈이 아니다”
예술고등학교에 재학하는 한 학생은 “연예인들도 학업 성취도 외의 방식으로 재능을 인정받기 위해 그들만의 경쟁을 거쳐야만 한다”며 “연습생까지 포함하면 경쟁률이 낮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예체능 전공 분야의 입시 경쟁도 일반 전형만큼 치열하다. 정원 외로 연예인들을 선발하는 경우에는 일반 학생 대 연예인의 경쟁 구도가 아닌 특기생끼리의 경쟁 구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입학생들과 똑같은 선발 과정을 거쳤지만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특례입학 논란에 휩싸인 사례도 있다. 2008년 서울 소재 대학의 연기 관련 학과에 입학한 한 여자 연예인은 30여 명을 선발하는 전형에 응시해 실기와 이론 시험을 통해 선발됐다. 대학 측은 논란이 되자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정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고, 일반 학생과 똑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치렀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김승근 서울대 음대 교수는 “연예인들이 문화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연예인들이 거둔 성과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계량화해 평가할 수 있는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인지도가 높다는 것과 재능이 출중하다는 것은 명확하게 구분해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성균관대 예술학부 영상학과에 입학한 배우 구혜선은 최근 자신의 성적표를 트위터에 직접 공개했다. 7개 전공과목 중 한 과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A+를 받아 눈길을 끌었다. 학업과 연예계 활동을 병행하는 연예인이 모두 학업에 소홀하다며 일반화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대학 측에서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연예인을 통해 거두는 긍정적인 홍보 효과도 간과할 수는 없다”며 “특기자로 입학한 연예인들을 특별한 직업군으로서가 아닌 본교의 학생으로서 학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 이래서 반대한다
반대 측 전문가들은 국내 대학들이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스타를 특례입학시키는 데 대해 “교육과는 상관없는 활동인 데다 사회 형평성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부 대학생은 “연예인들은 입학한 뒤가 더 문제다. 수업을 듣지 않고 시험을 안 봐도 무사히 졸업하는 것을 보면 심한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 “도덕적, 교육적으로도 형평성 어긋나”
김윤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연예인 특례입학을 “유명 연예인을 동원해 학교를 홍보하려는 상업 활동”으로 정의했다. 실제 아이돌이나 스포츠스타가 입학하면 학교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이미지가 개선되는 홍보 효과를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대학들의 ‘스타 모시기’ 경쟁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A대 입학처 관계자는 “서울 시내 주요 대학들이 입학뿐 아니라 등록금 4년 면제 등 각종 혜택까지 제공하면서 연예인을 데려가려 한다”고 말했다. 기획사들도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연예인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여러 대학과 접촉해 입학을 ‘거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한경쟁시대에 대학이 홍보 등 각종 상업 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해도 ‘교육’과 ‘사회 정의’라는 측면에서 연예인 특례입학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준식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기를 얻고 큰돈을 벌면서 대학까지 쉽게 들어가는 것이 다른 학생들 눈에 어떻게 보이겠느냐”며 “교육마저 인기와 마케팅에 편승하면 젊은이들에게 허영심과 허황된 욕망, 좌절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론자들은 ‘공부 아닌 다른 재능으로도 대학 입학의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찬성 주장에 대해 ‘대학의 근본 목적인 교육을 등한시한 논리’라고 지적했다. 강태중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이 ‘학위 장사’를 한다고 비치면 교육에 대해 사회적 냉소가 일어날 것”이라며 “연예인으로서의 재능, 성공이 대학 교육을 받을 자격과 치환될 수 있는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특례입학은) 교육이라는 대학의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예인 특례입학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일부 대학에서는 이를 폐지하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건국대의 경우 지난해 말 연예인 특례입학을 없애는 내용을 골자로 한 ‘2013년도 입학전형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박성열 건국대 교육공학과 교수(입학처장)는 “연예인 특례 논란을 반영한 것”이라며 “예술대학에 지원하는 연예인들도 앞으로 똑같이 실기시험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재학생들 “그들은 특권층… 박탈감 심해”
대학생들은 주로 연예인 특례입학 이후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제기했다. ‘정원 외로 입학하면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논리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다양한 재능을 인정하는 대입 전형까지는 일부 인정하더라도 특례입학 연예인들의 학교생활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이 크다는 반응이다. 백상현 씨(24·동국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는 “학교에서 본 연예인은 특별대우 대상”이라며 “연예활동 보장을 위해 수업에 수시로 빠져도 일반 학생들과 다른 기준으로 평가받는 탓에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특례입학 연예인과 수업을 함께 들은 경험이 있는 대학생들에 따르면 연예인들은 주로 학기 초에만 수업에 출석한다. 학기 중간이 되면 강의실에 나타나지 않는다. 교수들 역시 이를 당연시하고 출석조차 부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학교 홍보와 행사 참여 등 공헌을 인정받아 학년이 올라가고 제때 졸업한다. 박종찬 씨(30·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3학년)는 “(재학생들이) 학업에 소홀한 연예인에게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명문대 입학을 제안받고서도 ‘특례입학을 반대한다’고 밝힌 연예인도 있다. 가수 아이유(본명 이지은·19)는 고교 3학년이던 지난해 말 여러 대학에서 특별전형 입학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 제안들을 거절했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은 (입학을 위해) 고생하고 노력한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며 “가수활동에 대학이 필수도 아닌 데다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자신이 없는 내가 들어갈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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