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찬양하면 A+… 비판 학생은 B학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4일 03시 00분


현직 대학교수가 “김일성 회고록 읽고 감상문 내라”
檢, 국보법 위반 혐의 기소

자신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를 읽게 하고 감상문을 제출토록 한 현직 대학교수가 검찰에 적발됐다. 이 교수는 김 주석을 찬양한 감상문을 제출한 학생에게는 높은 학점을 준 반면 비판하면 낮은 학점을 줬다고 검찰은 밝혔다.

울산지검 공안부(부장 이태승)는 23일 울산대 국문과 A 교수(55)를 국가보안법(이적행위)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A 교수는 빨치산 전력자와 이적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관계자 등과 교류했다. 또 2003년 북한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 등에서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총서’ 등 북한 원전과 참고자료 등 200여 건을 모두 내려받아 탐독하면서 주체사상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 사이트는 2004년 폐쇄됐다.

A 교수는 2005∼2010년 ‘국문학사’ ‘고전시가론’ 등의 수강생들(380여 명)에게 총 8권에 달하는 ‘세기와 더불어’를 읽은 뒤 감상문을 제출토록 했다. A 교수는 ‘(김일성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인민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독재자의 이미지는 없다’는 요지로 감상문을 제출한 학생에게는 최고인 A+학점을 줬다. 반면 ‘김일성은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반대파에 대해 피의 숙청을 자행했다’는 등으로 비판한 학생에게는 B학점을 줬다.

A 교수는 또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김일성 장군님’으로 부르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주석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학생을 강의실에서 내보낸 적도 있다고 당시 수강생들이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 교수는 이어 같은 대학 교수 2명에게도 ‘세기와 더불어’를 e메일로 발송하는 등 포섭을 시도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A 교수는 학생운동 관련 전과는 없으며 해병대 출신이다.

검찰은 김 주석에 대해 긍정적인 감상문을 제출한 당시 학생 2명에 대해서는 대학 졸업 후 반성하고 있는 점을 참작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2명 가운데는 한 명은 현재 국가공무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A 교수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태백산맥’을 비롯한 국내 여러 문학작품을 추천한 뒤 학생이 책을 선택해 감상문을 써 제출하도록 했다. 그 가운데 ‘세기와 더불어’도 포함돼 있었다”며 “김일성 찬양 여부에 따라 학점을 차별해서 주지 않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는 A 교수로부터 검찰 발표에 대한 반론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할 말이 없다”며 끊어버렸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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