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를 읽게 하고 감상문을 제출토록 한 현직 대학교수가 검찰에 적발됐다. 이 교수는 김 주석을 찬양한 감상문을 제출한 학생에게는 높은 학점을 준 반면 비판하면 낮은 학점을 줬다고 검찰은 밝혔다.
울산지검 공안부(부장 이태승)는 23일 울산대 국문과 A 교수(55)를 국가보안법(이적행위)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A 교수는 빨치산 전력자와 이적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관계자 등과 교류했다. 또 2003년 북한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 등에서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총서’ 등 북한 원전과 참고자료 등 200여 건을 모두 내려받아 탐독하면서 주체사상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 사이트는 2004년 폐쇄됐다.
A 교수는 2005∼2010년 ‘국문학사’ ‘고전시가론’ 등의 수강생들(380여 명)에게 총 8권에 달하는 ‘세기와 더불어’를 읽은 뒤 감상문을 제출토록 했다. A 교수는 ‘(김일성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인민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독재자의 이미지는 없다’는 요지로 감상문을 제출한 학생에게는 최고인 A+학점을 줬다. 반면 ‘김일성은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반대파에 대해 피의 숙청을 자행했다’는 등으로 비판한 학생에게는 B학점을 줬다.
A 교수는 또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김일성 장군님’으로 부르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주석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학생을 강의실에서 내보낸 적도 있다고 당시 수강생들이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 교수는 이어 같은 대학 교수 2명에게도 ‘세기와 더불어’를 e메일로 발송하는 등 포섭을 시도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A 교수는 학생운동 관련 전과는 없으며 해병대 출신이다.
검찰은 김 주석에 대해 긍정적인 감상문을 제출한 당시 학생 2명에 대해서는 대학 졸업 후 반성하고 있는 점을 참작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2명 가운데는 한 명은 현재 국가공무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A 교수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태백산맥’을 비롯한 국내 여러 문학작품을 추천한 뒤 학생이 책을 선택해 감상문을 써 제출하도록 했다. 그 가운데 ‘세기와 더불어’도 포함돼 있었다”며 “김일성 찬양 여부에 따라 학점을 차별해서 주지 않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는 A 교수로부터 검찰 발표에 대한 반론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할 말이 없다”며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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