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주머니도 긴급 투입 전국적으로 가뭄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18일 오후 서울 영동대로 구간에서 도로 중앙 가로수에 강남구 살수차가 물을 공급하고 있다. 나무에 설치한 물주머니도 이번 가뭄에 가로수를 살리는 묘책으로 떠올랐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기상 관측 이래 100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뿌리가 얕은 서울시내 가로수와 공원의 꽃나무, 잔디가 말라죽고 있다. 하도 가뭄이 심하다 보니 농작물 피해만 있는 게 아니라 도심의 가로수까지 피해를 보고 있는 것.
서울 지역엔 최근 48일 동안(5월 1일∼6월 17일) 고작 10.6mm의 비가 내렸다. 이는 평년(165.8mm)의 6.4% 수준이다. 1908년 서울 지역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으니 104년 만의 가뭄이다.
○ 도시 나무들 고사 직전
18일 찾은 서울 양재대로 중앙분리대 조경구역에서는 작은 나무, 큰 나무 할 것 없이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나무 허리에 매단 물주머니가 버거워 보였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한창 녹음을 자랑해야 할 버즘나무 은행나무 향나무 철쭉 줄사철 회양목 맥문동 등이 노란 빛을 띠고 있었다. 반나절 전에 물을 주었는데도 땅은 쩍쩍 갈라져 있었다. 김병완 강남구 조경팀장은 “급수차 6대가 매일 담당 구역을 돌며 물을 주고 있어 말라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근처 인도의 가로수 밑에는 비교적 가뭄에도 잘 견딘다는 맥문동이 시들고 있었다. 30∼40그루 가운데 멀쩡한 것은 5그루뿐. 대부분 잎의 끝부분이 노랗게 타들어갔다. 나무를 볼 때마다 속이 시커멓게 탄다는 김 팀장은 “서울에서 이런 가뭄은 처음 본다. 국가적 수준의 재난 아니냐”고 말했다.
강남구는 3대만 운행하던 급수차를 최근 6대로 대폭 늘렸다. 5월 말부터 새로 심은 나무에만 달아주던 25L짜리 물주머니 500개도 긴급 투입했다.
도시에서 가뭄을 실감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주기적으로 물을 주는 서울 시내 도로와 인도 주변 녹지가 시들해질 정도다. 서울 시내에는 가로수 28만4000그루, 띠녹지 350km, 녹지대 424만5000m²가 조성돼 있다.
광화문과 청계천 주변 녹지에 외떡잎식물은 이파리 바깥부터 노랗게 변하고 있었다. 회양목 이파리 끝은 손으로 만지니 낙엽처럼 부서졌다. 청계천 입구 수크령도 힘을 잃고 쓰러졌다.
서울 동작구 상도터널 앞에 조성된 1150m²(약 348평) 규모의 조경구역 나무들도 타들어가고 있었다. 한강대로 중앙에 있는 잔디 대부분은 이미 말라 비틀어졌고 꽃나무 역시 군데군데 이파리가 누렇게 변했다. 도로변은 땅이 물을 머금지 못하는 데다 지열이 높아 더욱 피해가 크다.
○ 서울시 장기 대책 마련 나서
서울시는 말라죽는 나무 살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시는 8일 각 자치구에 급수차를 빌릴 수 있도록 2억여 원을 지원했다. 각 자치구가 15일 정도 급수차를 추가로 배치할 수 있다. 도로청소차, 소방차도 동원됐다. 지금으로선 나무가 줄기까지 말라 생을 마치기 전에 비가 오는 게 최선의 대책이다. 앞으로 열흘 정도가 고비다. 18일 오후부터 남해안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서울에는 이번 주 내내 비 예보가 없다.
배호영 시 조경과장은 “앞으론 기후 변화로 인한 극심한 가뭄이 올해뿐만 아니라 매년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대책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선 서울 가로수를 가뭄에 강한 수종으로 교체하고 빗물 유입이 잘되도록 녹지를 보도보다 낮은 곳에 조성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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