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대부업자 123명 세무조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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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사채와의 전쟁
업자 253명에 1597억 추징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여대생 A 씨. 지방 출신으로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등록금과 생활비를 직접 벌어 마련해야 했던 그는 2010년 상반기 등록금이 모자라 애태우던 중 ‘여대생 대출’이라는 길거리 광고전단을 보고 조모 씨(54)를 찾아갔다. 미등록 대부업체를 운영하던 조 씨는 그녀에게 200만 원을 연 120% 조건으로 대출해줬다.

A 씨는 학업을 병행하며 아르바이트 등으로 대출금과 이자를 갚으려 했지만 원리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조 씨는 “더 대출해 줄 테니 염려 말라”며 2차례에 걸쳐 밀린 원금과 이자를 대출금으로 바꿔주는 일명 ‘꺾기’ 방식으로 추가 대출을 해줬다.

A 씨의 연체원리금이 최초 대출금의 1000%인 2000만 원이 넘어서자 조 씨는 마각을 드러냈다. “부모에게 알리겠다”면서 대출금 상환을 협박한 뒤 A 씨를 유흥업소 접대부로 넘기며 대출원리금을 챙겼다. A 씨는 학업을 중단하고 접대부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조 씨는 이런 수법으로 벌어들인 31억 원을 친인척 명의의 차명계좌로 관리하면서 상가 등 부동산투자에 나섰다가 국세청에 적발돼 15억 원을 추징당하고 검찰에 고발됐다.

국세청은 17일 ‘전국 민생침해담당 조사국장 및 관서장 회의’를 열고 조 씨 같은 불법 사금융업자와 악덕 대부업자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했다. 불법 고리이자로 고소득을 올리면서 대포통장이나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 탈세한 대부업자 123명에 대해 긴급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연 300% 이상의 살인적인 고금리를 요구하고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경우 폭행, 인신매매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대출금을 회수한 악덕 사채업자 253명을 적발하고 1597억 원을 추징한 사실도 공개했다.

▼ 2000만원 빌렸던 가장은 자살하고 악덕 대부업자는 벤츠 타고 호화생활 ▼

악덕 사채업자의 수법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행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미등록 대부업체를 운영하던 최모 씨는 인테리어사업자 B 씨에게 2000만 원을 연리 120%로 대출해준 뒤 B 씨가 연체하자 전세보증금 4000만 원을 압류했다. 이에 B 씨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이를 비관한 B 씨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어 최 씨는 옷가게를 하던 C 씨에게 1000만 원을 연리 120%로 빌려준 뒤 연체하자 폭력을 행사해 영업을 방해하고 상가보증금을 압류했다. 결국 C 씨는 가게에서 쫓겨나 건설현장 공사판을 전전하는 일용 노동자로 전락했다. 최 씨는 이런 방식으로 갈취한 돈으로 강남 호화주택에 살면서 벤츠를 몰고 다니는 호화생활을 하다가 33억 원의 이자수입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은 혐의로 적발돼 16억 원을 추징당하고 검찰에 고발됐다.

기업형 등록 대부업체들은 좀 더 지능적이었다. 서울 중구 명동에서 대부업체를 운영하던 김모 씨는 전주(錢主) 50여 명으로부터 수백억 원의 자금을 모집해 기업들에 연 120%의 고리로 대출해주고, 이후 연체하면 주가조작 등을 통해 담보 주식의 주가를 끌어올린 뒤 매각해 대출금을 회수했다. 또 기업사냥꾼과 공모해 자금난에 처한 상장기업을 인수한 뒤 회사자금을 횡령하는 등의 수법으로 차익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주가가 폭락하거나 회사가 상장 폐지돼 해당기업의 소액주주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김 씨는 93억 원의 수입신고를 누락한 혐의로 적발돼 42억 원을 추징당하고 고발 조치됐다.

정모 씨는 연리 360%로 1억 원을 빌려주면서 채무자의 집을 담보로 잡은 뒤 채무자가 다시 집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으려 하자 가압류를 설정하는 등 고의적으로 상환을 방해하면서 고리의 이자를 뜯어냈다. 이 과정에서 정 씨는 거래 내용을 숨기기 위해 채무자 명의의 통장과 도장을 건네받아 사용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국세청은 정 씨에게 소득세 15억 원을 추징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한편 국세청은 홈페이지에 ‘대부업자 탈세신고센터’를 운영하는 한편 지방국세청에 ‘민생침해사업자 분석전담팀’을 설치해 불법 사금융업에 대한 상시 세무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불법사채#사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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