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메트로 달인]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 기수 고병관-고수 김희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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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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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화 수문장이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위탁업체 ‘한국의 장’ 연기자들이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을 재현하고 있다. 연기자 고병관 씨와 김희원 씨는 4년째 행사에 참여하는 베테랑 수문장이다. 동아일보DB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위탁업체 ‘한국의 장’ 연기자들이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을 재현하고 있다. 연기자 고병관 씨와 김희원 씨는 4년째 행사에 참여하는 베테랑 수문장이다. 동아일보DB
‘둥 둥 둥.’

6일 오후 2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웅장한 북소리와 함께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이 시작됐다. 궁궐을 지키는 수문장과 수문군이 암호를 교환하고 맞교대를 하는 의식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겹겹이 둘러서서 의식을 지켜봤다. 여기저기서 사진기 셔터를 누른다.

1996년부터 시작된 수문장 교대의식은 외국인 관광객이 반드시 들르는 인기 관광코스가 됐다. 악기를 연주하는 취타대 15명, 수문군 47명 등 모두 62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처음에는 공익근무요원이 동원돼 연기를 했지만 지금은 ‘한국의 장’이라는 전문회사가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4년차 베테랑 수문장인 고병관 씨(27)와 김희원 씨(25)를 지난달 26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뒤에서 만났다.

고 씨는 주작 현무 백호 청룡 삼족오가 그려진 오방기(五方旗)를 드는 기수다. 깃발 무게는 7kg이 훌쩍 넘는다. 김 씨는 엄고수(嚴鼓手)다. 의식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등 엄고수의 북소리에 따라 행사가 진행된다.

○ 날씨가 가장 큰 적


표정 변화가 없어야 한다. 움직임도 없어야 한다. 이것이 수문군 연기의 핵심이다. 연기를 잘하는 비법이 있을까.

기수 고병관 씨.
기수 고병관 씨.
“일단 배짱이 있어야 해요. 작은 실수를 해도 뻔뻔해야 연기가 흔들리지 않아요. 관객은 배우가 당황하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해요.”(김 씨)

“반복해서 연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고 씨)

동작을 모두 익히는 데는 고통이 따랐다. 팔을 직각으로 유지하면서 무거운 깃발을 들고 서 있으려니 처음에는 팔이 저리고 아파 들 수 없을 지경이었다.

가장 힘든 것은 날씨다. 쨍쨍 내려쬐는 햇볕도, 쌩쌩 불어오는 칼바람도 피할 길이 없다. 특히 비 온 뒤 기온이 올라가는 날이 참기 힘들다.

“비가 많이 오면 행사를 취소해요. 그러나 비가 오다 행사 시간 직전 멈추면 의식을 진행하거든요. 이때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와 옷이 찜통이 돼요. 2년 전 12분 만에 행사가 중단된 적이 있어요. 숨을 못 쉬어 모두 병원에 실려 갈 뻔했죠.”(고 씨)

“맞아요, 차라리 겨울이 나아요. 옷을 세 겹이나 입고 갑옷을 입으면 한겨울에도 땀이 나죠. 여름에는 아이스조끼를 입고 나가도 덥다니까요.”

○ 아찔했던 순간도

체력 소모가 심하다 보니 원래 튼튼한 사람을 주로 채용한다. 깃발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키도 175cm가 넘어야 유리하다. 교대의식에 한 번 투입해 보는 것이 면접이다. 이때 버티면 합격, 못 버티면 불합격이다.

베테랑인 고 씨와 김 씨도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

고수 김희원 씨.
고수 김희원 씨.
“오방기 기수가 벗겨지려는 모자를 잡다가 기를 놓친 거예요. 깃발이 3m가 넘고 끝이 삼지창으로 되어 있거든요.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했는데 아슬아슬하게 비켜갔죠.”(김 씨)

몸이 고된 일이다. 팔에 매달리거나 나무 막대로 찌르는 등 짓궂은 관광객도 많다. 주말에도 일을 한다. 월급은 130만 원 정도라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거나 직업이 2개인 직원이 많다. 그래도 한국 문화를 소개한다는 자긍심이 높다.

“사진 찍으시는 관광객들의 ‘멋있어요’ 한마디면 힘들단 생각이 사라지죠. 갈수록 관광객이 늘어나 한국 문화를 소개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해요.”(고 씨)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덕수궁#수문장 교대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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