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콘트라베이스 교수의 ‘울트라 비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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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음대서 이런 일이… 경찰, 이호교 교수 영장 신청
‘국내 유일의 전공교수’ 악용… 실기시험 칸막이 없어 부정 쉬워

제자에게 최고점 이호교 교수는 제자 김모 씨에게 92점의 최고점을 줘 다른 교수들도 높은 점수를 주도록 유도했다(가로 검은 부분). 이 교수는 김 씨 외에 다른 수험생에게는 65점, 50점 등 최저점에 가까운 점수를 줬다(세로 굵은 선 표시 부분).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제공
제자에게 최고점 이호교 교수는 제자 김모 씨에게 92점의 최고점을 줘 다른 교수들도 높은 점수를 주도록 유도했다(가로 검은 부분). 이 교수는 김 씨 외에 다른 수험생에게는 65점, 50점 등 최저점에 가까운 점수를 줬다(세로 굵은 선 표시 부분).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제공
김모 씨(56)의 아들(22)은 음대 피아노 전공 입학을 꿈꿨지만 경쟁률이 높은 피아노 전공에 합격할 자신이 없어 고2 때부터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은 콘트라베이스로 전공을 바꿨다. 그러나 2009년 말 유명 대학 음대 실기시험에서 서툰 연주로 불합격했다.

아들을 국내 최고의 음대 중 하나인 국립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음악원에 보내려던 김 씨는 아들이 재수를 시작한 2010년 초 솔깃한 소식을 들었다. 국내 유일의 콘트라베이스 전공 정교수인 한예종 이호교 교수(45)에게 배운 제자들이 모두 한예종에 합격했다는 소문이었다. 김 씨가 교습을 부탁하자 이 교수는 국립대 교수가 개인 교습을 하는 것은 불법인데도 받아들였다. 아들은 교수실과 불법 교습소에서 시간당 15만 원씩을 주고 40여 회에 걸쳐 교습을 받았다. 2010년 6월에는 이 교수가 “내 악기를 쓰라”며 콘트라베이스를 빌려줬다. 김 씨 아들은 같은 해 10월 한예종 실기시험에 응시해 최종 합격했다.

[채널A 영상]이 교수 연습실 가보니 ‘학원’ 마냥…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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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이 교수는 본심을 드러냈다. 그는 빌려준 악기를 1억8000만 원에 사라고 강요했다. 이 교수는 “이탈리아의 명장인 발단토니가 1863년 제작한 것으로 5억 원이 넘는 악기”라고 했다. 또 “실력이 부족한 아들이 합격한 건 내가 최고점을 준 덕분이다. 입학을 도운 다른 교수들한테도 줘야 하니 8000만 원을 달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실기시험에서 김 씨 아들에게 최고점인 92점을 줬다. 한예종 음악원은 부정 입학을 방지하기 위해 최저·최고점을 뺀 뒤 평균 점수를 낸다. 그러나 콘트라베이스 전공 교수가 준 점수를 참고해 바이올린 전공 교수 등 다른 교수들도 콘트라베이스 전공 수험생에게 점수를 주는 관행 때문에 이 교수가 김 씨 아들에게 최고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여론을 주도하면 최고점이 빠지더라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또 불합격자에게는 최저점을 줘 다른 교수들도 낮은 점수를 주도록 유도했다. 김 씨 부부는 2010년 11월 교수가 요구한 2억6000만 원을 모두 줬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이 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22일 밝혔다. 김 씨 부부도 뇌물 공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이 이 교수가 강매한 악기 라벨을 감식한 결과 국내산 접착제를 쓰는 등 ‘짝퉁’으로 드러났다. 발단토니가 만든 진짜 악기는 라벨에 발단토니의 ‘풀네임’인 ‘주세페 발단토니 안코나에(anconae)’라고 써 있는 것과 달리 ‘주세페 발단토니 안콘체(anconze)’라고 돼 있었다. 한 악기 판매상은 경찰에서 “이 교수가 2009년 완전히 고장 난 악기를 들고 와서는 ‘고쳐 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3명에게 불법 교습을 해 4000만 원을 챙겼다. 자신의 악기를 고가에 강매하거나 제자의 악기와 강제로 교환한 혐의도 받고 있다. A 씨가 가지고 있던 500만 원 상당의 현악기 활을 본 이 교수는 “활이 커서 네 악기와 맞지 않는다”며 자신의 활과 강제로 바꿨다. A 씨가 받은 활은 접착제로 붙인 부러진 활이었다. 다른 교수에게 1000만 원에 팔기로 한 콘트라베이스는 제자에게 2500만 원 정도에 강매했다. 제자에게 특정 악기사의 악기를 강매한 뒤 악기사에서 수수료로 10%를 받아 1350만 원을 챙기고, 최신형 휴대전화를 사오라고 해 70만 원 상당의 휴대전화를 가로채기도 했다.

경찰은 2002년부터 올해까지 김 씨 아들을 포함해 이 교수 제자 19명이 모두 한예종 콘트라베이스 전공에 합격한 것에도 비리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이 교수에게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한예종 음악원 실기시험은 다른 학교 음대 시험과 달리 수험생이 연주할 때 심사위원과 학생 사이에 가림막을 치지 않고 심사위원들끼리도 점수를 공유할 수 있도록 칸막이가 없어 부정 입학이 쉬운 구조”라고 말했다.

한예종 관계자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오는 대로 부정 입학 의혹 학생들에 대한 입학 취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교육#한예종부정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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