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SNS’ 권하는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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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SNS’ 권하는 사회… SNS 관리 대학강좌도 생겨

대학생 김모 씨(26)는 전자상거래론 수업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관리법을 듣고 취업용 트위터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팔로잉을 최대한 늘리고 리트윗을 반복했다. 특히 경제 뉴스는 무조건 팔로잉했다. 프로필에는 정장을 입은 깔끔한 사진을 넣었다. 그러자 잘나가는 소셜커머스 업체에서 이력서를 보내 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는 지방대를 나오고 토익 점수도 520점밖에 안 되는데 SNS를 관리하지 않았으면 이런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 씨 같은 취업준비생들은 대부분 SNS 관리에 공을 들인다. 채용 과정에서 SNS를 활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직장인들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상사가 볼 수 있는 계정을 따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가짜 친구’를 만들고 본모습과 다른 이중생활을 하는 셈이다.

○‘세컨드 계정’으로 이중생활

서울의 한 대학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박모 씨(27)도 트위터 계정이 두 개다. 개인용 계정에는 친구와 욕설을 섞어가며 농담을 하거나 신변잡기를 올린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과 관련된 내용들을 리트윗하기도 한다. 대외용 계정에는 스스로 작성한 글이 거의 없다. 박 씨는 “너무 교과서적인 내용만 올려도 티가 날 것 같아서 경제인이나 스포츠스타를 팔로하고 그중 쓸 만한 글만 리트윗한다”고 말했다.

중앙 정부부처 공무원 최모 씨(32)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각각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친구들과 사용하는 트위터에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팔로하고 직장 상사에 대한 ‘뒷담화’도 거리낌 없이 날린다. 그러나 직장과 연락처, 학력까지 공개한 페이스북 친구들은 대부분 직장 상사나 동료들이라 사적인 내용은 담벼락에 남기지 않는다. 페이스북이 아니라 직장을 위한 ‘페이크(fake·거짓)북’인 셈이다. 최 씨는 “영국에서 직장 상사에 대한 험담을 해서 해고된 사람도 있다는 뉴스를 봤다”며 “공무원이다 보니 아무래도 행동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채널A 영상] “능력보다 얼굴?” 취업 준비생 성형 열풍

○과거 지우기

입사 전형을 앞둔 취업 준비생들은 SNS에 남긴 욕설이나 친구들과 놀러 다닌 흔적 등 숨기고 싶은 과거를 지우느라 분주하다. 인터넷에선 이런 과거를 ‘흑(黑)역사’라고 부른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그만두고 올해 하반기 금융회사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송모 씨(27)는 “고시에 시간을 낭비했다는 인상을 주기 싫어 고시 공부를 하면서 낙오자처럼 살았던 시절의 글을 전부 삭제했다”고 말했다. 곧 대학을 졸업하는 취업준비생 김모 씨(28)도 “e메일 주소와 SNS 계정을 구글링(구글로 검색)해 정부를 비판했거나 반사회적이라고 여겨질 만한 내용을 모두 지웠다”고 털어놓았다.

기업들은 예전에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채용을 진행했지만 요즘엔 SNS를 활용해 채용 정보를 실시간 제공하고 지원자들과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원자들의 SNS 계정과 사회관계망을 알게 된다.

취업정보업체 인크루트의 정재훈 과장은 “이력서 스펙이 변별력이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SNS를 통해 지원자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보는 채용 담당자들이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SNS로 자신을 홍보

대학생 김 씨는 영어 회화에 자신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면접을 앞두고 어학연수 시절 사귄 외국 친구들과 영어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흔적을 남겨뒀다. 이를 입사지원서에 첨부한 QR코드에 연결해 면접위원들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김 씨의 QR코드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취업을 위해 꾸준히 관리해온 SNS 계정들이 연동돼 있다.

대학가에선 SNS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강의를 개설해 SNS를 취업에 활용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성친구 등과의 사적인 이야기와 이모티콘 사용을 자제할 것 등 구체적인 관리법을 알려준다. 트위터 팔로잉, 팔로어 수로 학점을 매기기도 한다.

최재용 한국소셜미디어진흥원 원장은 “기업에서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SNS를 잘 활용하는 사람을 선호하는 추세”라며 “SNS를 잘 이용하는 것이 취업 전략이라고 여기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박새롬 인턴기자 이화여대 사학과 3학년  
#취업#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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