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설치는커녕 근무수당도 못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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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자체 ‘복지 확대’ 반발 왜

전국 228개 지방정부의 사회복지 국고보조사업 예산이 지난해 7조1062억 원으로 최근 9년새 3.7배로 늘었다. 국회예산정책처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같은 기간 시군구 전체 예산은 140조9070억 원으로 2002년(91조1154억 원)보다 1.54배로 늘어났을 뿐이다. 국고보조사업 예산 증가 속도가 2배 이상 빠른 셈이다.

반면 같은 기간 중앙정부의 사회복지 국고보조사업 예산은 2011년 14조8621억 원으로 3.3배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무엇보다도 중앙정부가 각종 복지정책을 남발하면서 정작 예산 부담은 지방정부에 떠넘기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국고와 지방비를 매칭해 실시하는 사회복지사업은 지난해 모두 146개에 달했다. 이에 따라 일선 지자체에서는 어린이집 설치나 도로 확장사업을 포기하거나 심지어 근무수당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 생색은 정부가, 뒤처리는 지자체가

“갑자기 복지사업이 ‘턱’ 하니 발표되는데 지방정부는 날벼락을 맞는 것 같다. 총선 대선을 앞두고 정부와 국회가 생색만 내고 뒤처리는 지방자치단체가 한다.” 전국 지자체의 단체장들이 이구동성으로 쏟아놓은 불만이다.

사회복지비 부담은 자치구로 갈수록 커진다. 지자체의 전체 예산에서 사회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시는 21.1%, 군은 15.4%이지만 자치구는 43.5%까지 치솟는다.

서울 마포구는 올해 구립어린이집 4곳을 늘리려다 포기했다. 0∼2세 영아보육료 지원 방침이 발표되면서 부랴부랴 29억2000만 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포구 관계자는 “0∼2세 영아보육료 지원책은 이미 2012년 예산안이 확정된 다음인 지난해 12월 31일 발표됐다. 기존 사업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민간어린이집을 사들여 구립어린이집을 만드는 데 10억 원이 필요하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상암동 2곳, 용강동, 노고산동에 지어질 예정이었다. 구립어린이집은 부족한데 보육료 지원만 늘어나는 ‘역설’이 발생하는 셈이다.

낙후된 지역은 복지 부담이 커 지역 개발에 투자하기 어려워 다시 뒤처지는 악순환도 일어난다. 서울 관악구는 국고와 지방비 매칭 사업이 늘면서 지역 개발, 교통 인프라 투자 등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올해 남현길 예촌어린이공원부터 아파트단지 입구까지 176m를 폭 12m의 2차로로 확장하려던 사업을 접었다. 재건축 아파트 1027채가 들어서 정체가 극심하지만 예산이 없었다.

재정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재정자주도도 악화되고 있다. 재정자주도는 지자체 예산 규모 대입 자체 수입과 보조금을 합한 비율. 지자체 평균 2007년 67.4%에서 2011년 62.3%로 떨어졌다. 자치구는 65.2%(2007년)에서 55.5%(2011년)로 10%포인트나 떨어졌다.

○ “포괄보조금제 등 도입도 고려를”


현재 국고보조사업의 기준보조율은 서울 20∼50%, 지방 50∼80%다. 영·유아보육료 사업이 20∼50%로 보조율이 가장 낮고 기초생활보장급여와 기초노령연금은 50∼80%로 높은 편이다. 여기에 지자체 재정 상태를 고려해 최대 10%까지 보조율을 높이거나 낮추는 차등보조율을 적용한다. 그러나 서울시 안에서도 자치구별로 재정자주도의 격차가 큰 데다 사회복지사업 수혜자 수가 달라 제대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기초노령연금이 단적인 예다. 만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수급률은 전남 완도군이 94.1%, 서울 서초구가 26.5%로 4배 가까이 차이 난다. 2010년 기초노령연금 수급률이 90% 이상인 곳은 모두 농어촌 지역이었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 노인 장애인 아동 등의 사회복지 수급자 수를 국고보조율 결정 기준에 포함하거나, 복지사업을 시행하기 전에 국고보조사업이 지방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분석할 것을 제안한다. 영국은 복지 수요를 반영해 보조율을 정하고 있다. 미국은 주정부가 예산을 자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한 포괄보조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김의섭 한남대 경제학과 교수(한국지방재정학회장)는 “정부가 세입은 틀어쥐고 세출사업만 지방에 떠넘기고 있다. 세출은 느는데 세입은 제자리인 것이 문제”라며 “당장 지방세원 확대가 어렵다면, 국고보조율을 높이고 포괄보조금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광역단체장 국고부담률 인상 요구

박원순 서울시장 등 광역단체장 16명은 1일 전남 여수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재정이 부족하다”며 중앙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소속 정당은 달라도 지원 요청에는 한목소리였다. 박 시장은 영·유아 보육사업 국고보조비율(현행 20%)을 50%로 올리는 것을 포함해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의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 △노후 지하철 재투자 비용 △공공주택 건립비의 정부지원율(현행 12%) 인상 등 4가지를 요구했다. 과거 이명박, 오세훈 시장 시절부터 서울시가 고민했던 사안이지만 ‘지방 고유업무’ 성격이 강해 요청을 자제했던 사안들이라고 한다.

이 대통령은 요구사항을 취합해 부처 장관들에게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며 “자치단체장의 요청 규모가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아동복지#지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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