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10여명 “교사퇴출” 시위… 학생은 “선생님 구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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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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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문 안양예고에선 지금 무슨 일이

안양예고 학부모들이 한 여교사를 ‘자질 부족 교사’로 지목해 쫓아내려 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24일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예고 앞에서 학부모들이 해당 교사를 파면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안양예고 학생 제공
안양예고 학부모들이 한 여교사를 ‘자질 부족 교사’로 지목해 쫓아내려 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24일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예고 앞에서 학부모들이 해당 교사를 파면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안양예고 학생 제공
수도권의 명문 예술고인 안양예고가 한 여교사 문제로 내홍을 앓고 있다. 학부모들은 ‘문제 교사’라며 내쫓으려 하는데 학생들은 “선생님을 구해 달라”며 구명운동을 벌이는 상황이다. 학생들의 반대에도 학교 측은 “문제가 커질 수 있다”며 그 교사의 수업을 중단시키고 해임 절차를 밟고 있다. 안양예고에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부실교사 vs 헌신교사’


사건은 두 달 전 이 학교 음악과 2학년 학부모 몇 명이 담임교사 A 씨를 부실교사로 지목하면서 시작됐다. 영어를 가르치는 A 교사가 수업용 유인물을 단 한 건도 나눠주지 않고 학생들이 수업 중 잠을 자도 가만 놔둔다는 게 학부모들의 주장이었다. 이들은 “A 교사가 레슨에 가야 할 아이들을 학교에 잡아두고 자습을 시키는 등 음대 준비에 집중해야 할 아이들을 배려하지 않았다”며 다른 학부모들을 상대로 “A 교사를 교단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에 동조한 학부모 10여 명은 23∼25일 학교 앞에서 “A 교사를 파면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주도한 학부모 대표 B 씨는 “딸이 담임인 A 교사에 대해 ‘수업이 부실하다’며 자주 불만을 토로했다”며 “넉넉지 않은 형편에 일반 학교보다 몇 배나 비싼 수업료를 내고 있고, 영어는 주요 입시과목인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A 교사 학급 학생들 상당수와 최근 1, 2년간 A 교사가 담임을 맡았던 학생들은 “선생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다”며 시위 중단을 요청했다. 학부모들의 민원을 접수한 학교 측이 A 교사의 담임직을 박탈하고 사직을 권고하는 등 해임 절차를 밟자 학생들은 인터넷에 ‘우리 선생님을 구해주세요’라는 글을 올리는 등 구명운동에 나섰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해당 학급 간부와 학생들, A 교사의 수업을 듣는 학생 30여 명을 취재한 결과 문제를 제기한 학부모들의 주장은 학생들의 생각과 크게 달랐다. 또 A 교사 학급 학생 40명 중 본보가 접촉한 24명은 모두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는 것을 반대한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매 과를 마칠 때마다 문법과 단어를 정리한 유인물을 두 번씩 나눠줬고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이 있으면 깨워서 뒤로 내보낸 뒤 필기를 열심히 하면 다시 앉게 했다”고 입을 모았다. 성적이 상위권인 한 학생은 “수업내용에 알맹이가 있고 다른 영어수업과 비교해도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A 교사가 레슨에 늦게 보낸 것에 대해선 “선생님이 학기 초 수업 태도가 안 좋은 몇 명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방과 후 2, 3번 자습을 시킨 것”이라며 “하지만 선생님이 레슨의 중요성을 이해한 뒤론 그런 일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 중엔 A 교사에게서 도움을 받은 경우도 많았다. 지난해 A 교사가 담임을 했던 한 학생은 “집에 빚이 많아 사채업자들한테 걸릴까 봐 학교를 며칠 결석했는데 선생님이 ‘누가 와도 네 학생부는 절대 보여주지 않겠다’며 위로해줬고 교내 장학금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말했다. 한 남학생은 “돈이 없어 학교를 그만둬야 할 뻔했는데 선생님이 장학금을 챙겨주신 덕분에 계속 다닐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누구를 위한 교사 퇴출인가


학부모들은 9월 해당 학급 학생들을 한 영어학원으로 불러 중국음식을 시켜주며 A 교사에 대한 불만사항을 물어봤다. 그 자리에서 일부 학생은 “수업이 재미가 없다” “수업이 너무 빡빡하다” 등의 의견을 냈다. 하지만 한 학부모가 실제로는 미혼인 A 교사에 대해 “(너희) 선생님은 ‘돌싱(돌아온 싱글·이혼한 남녀)’이다”란 말을 하며 A 교사를 깎아내리자 한 학생은 “어머니들이 이렇게 모여서 선생님을 부당하게 몰아내려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A 교사가 지난달 16일 교단에서 떠난 뒤 해당 학급 학생들이 동요하자 학부모들은 교실을 찾아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한 것”이라며 다독이기도 했다.

음악과 2학년 학생 중 대다수는 A 교사의 퇴출에 반대하지만 극히 일부는 찬성하면서 학생들 간에도 갈등 기류가 생기고 있다. 이 학급의 한 학생은 “예전엔 서로 격의 없이 대했던 친구들인데 요즘엔 뭔가 보이지 않는 장벽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인 A 교사는 “학기 말이라 실기평가와 기말시험이 있어 아이들에겐 공부에 집중해야 할 중요한 시기인데 이런 상황 때문에 혼란을 겪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지난 19년간 늘 최선을 다해 가르쳤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한 게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동료 교사는 “치맛바람에 교권이 침해당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섣불리 나섰다간 A 교사를 감싸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 마땅히 도와줄 길이 없다”며 “요즘은 초등학생들이 교사한테 ‘우리 엄마한테 말해서 선생님 자를 거예요’라며 겁을 주는 일도 자주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 대표 B 씨는 “우리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A 교사가 3학년에도 우리 아이들 담임을 맡게 될까 봐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막아야 했다”며 퇴출운동이 불가피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한 교사가 같은 과 학생들을 연이어 다음 학년까지 맡는 건 거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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