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제게 수능은 ‘행복능력시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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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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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살때 부모이혼→친척집 전전→아버지 가출→청소년 쉼터■ 서울 중앙여고 이수연 양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둔 8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어울림청소년쉼터에서 이수연 양이 막바지 공부를 하며 포부를 다지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둔 8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어울림청소년쉼터에서 이수연 양이 막바지 공부를 하며 포부를 다지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중앙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수연 양(19)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벅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이 양은 두 살 때 이혼한 부모와 떨어져 평생 친척집과 가출청소년 쉼터를 전전하며 살아왔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오롯이 자신의 의지와 능력만으로 준비해 온 수능시험이기에 이 양 자신에게도 ‘위대한 도전’인 셈이다.

이 양은 부모가 이혼한 뒤로 4년을 이웃집에 얹혀살았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는 전남 여수로 내려가 할머니집과 친척집을 전전했다. 부모 없는 설움이 싫었던 이 양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아버지를 찾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어렵사리 찾은 아버지는 네 평도 채 안 되는 단칸방에 홀로 사는 금융채무불이행자였다. 만났다는 기쁨도 잠시, 아버지는 이 양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무렵 ‘배 타러 간다’는 말만 남긴 채 다시 이 양을 떠났다. 당장 살 곳이 없던 이 양은 서울시 120다산콜센터의 추천을 받아 가출청소년을 위한 서대문구 어울림청소년쉼터에서 2년째 지내고 있다.

8일 오후 쉼터에서 만난 이 양은 “홀로 남겨지는 데 익숙해진 뒤로 공부에 더 열중하게 됐다”고 했다. 공부를 통해 불행의 덫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것이다.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에 있는 후배를 도울 수 있는 길도 공부뿐이라 믿었다.

이 양은 고교 입학 이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후 11시까지 이어지는 학교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이나 과외 수업을 받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양은 “마음이 맞는 친구나 실력이 비슷한 학생끼리 팀을 꾸려 가면 담당 과목 선생님이 일주일에 두 번씩 심화보충수업을 해줬다”며 “경제, 고전산문, 시가, 영어회화 수업을 들었던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 양 책상에 쌓여 있던 문제집 표지에는 각기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문제집이 비싸 친구들이 쓰던 걸 물려받거나 헌책방에서 사서 그렇다”며 웃었다. 연습장 한 장도 아끼려고 빽빽이 채워 쓴 흔적이 보였다.

평소 반에서 10등 정도의 성적을 유지해 온 이 양은 현재 고려대 세종캠퍼스 공공행정학과 수시전형에 예비합격한 상태다. 이 양은 “청소년 쉼터를 담당하는 사회복지공무원이 되고 싶어 공공행정학과를 지원했으며 기숙사를 제공하는 조건 때문에 성적보다 좀 더 낮춰 지원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가족처럼 보살펴 준 쉼터 직원, 교사에게 보은하고 후배들은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돕는 게 그의 꿈이다. 쉼터 생활을 하면서 느낀 불합리한 점은 직접 고치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아동복지시설 원생과 달리 쉼터 출신 학생에게 대학기숙사 비용이 지원되지 않는 건 불공평한 행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양은 고교 입학과 동시에 이런 꿈을 키우며 북아현동의 지역아동센터 ‘나무를 심는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그는 불우한 환경에 좌절하는 동생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집안 환경에 관계없이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많고 할 일도 많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만 있으면 돼. 우리는 아직 어리잖아.”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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