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별이 엄마, 함께 교회에 가지 못해 미안해. 작업을 얼른 끝내고 갈 테니 저녁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25일 오전 9시 반경 이용필 씨(32)는 아내 엄모 씨(31)에게 전화로 이렇게 말했다. 일요일이면 항상 아들(5) 딸(1)과 함께 교회에 갔던 남편. 하지만 이날은 일요일인데도 자신이 맡고 있던 대전 유성구 원촌동 하수도 차집관거 공사가 지체돼 현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남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4시간이 흐른 이날 오후 1시 반. 엄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연락을 받았다. 남편이 공사 중 흙 속에 매몰돼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날 사고는 대전시가 지난해 3월 발주한 갑천 제2차집관거 설치공사장에서 오전 9시 반경 발생했다.
갑천변에서 우천에 대비한 하수관 증설 작업으로 이 씨는 이날 같은 회사에 다니는 굴착기 운전사 김진구(47), 용접공 김진수 씨(51)와 함께 현장에서 흙막이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토사가 무너지면서 용접공 김 씨가 미리 파 놓은 깊이 7m가량의 구덩이에 빠지자 김 씨를 구조하려 손을 뻗었다가 다른 동료들과 함께 토사에 휩쓸려 매몰됐다.
목격자 이인희 씨(49·크레인 운전사)는 “가장 먼저 매몰된 용접공 김 씨가 파묻혀 얼굴과 손을 내밀자 이 씨 등이 손으로 띠를 만들어 구조하려다 함께 매몰됐다”며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져 손쓸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사고가 나자 경찰과 소방당국은 인력 50여 명과 굴착기 2대 등을 동원해 구조 작업을 벌였으나, 사고 발생 6시간 만인 오후 3시 반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씨의 직장 동료 임영환 씨(32)는 “이 씨가 사고 1시간 전 ‘잦은 비 때문에 공사가 지연돼 일요일이지만 일하러 나간다. 장비를 추가로 지원해야 한다’고 전화를 걸어왔다”며 “평소 성실한 데다 자기 업무에 책임감이 많았던 사람”이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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