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K리그 선수가 밝히는 프로축구 승부조작 기상천외 사례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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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점프하고… 공다투다 넘어지고…

창원지검이 프로축구 K리그 승부조작을 위해 선수들을 매수한 브로커 2명을 구속 수사하고 있다고 밝히며 불거진 승부조작 파문이 거세게 축구판을 흔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K리그 선수 출신 K 씨(28)는 “승부조작은 K리그에 만연돼 있어 캐면 캘수록 더 나올 것”이라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K 씨는 “언론에 김동현(상주 상무) 얘기가 흘러나왔는데 실제로 대표급 유명 선수들도 승부조작에 많이 연루됐다”고 말했다. 최근 2군으로 내려간 공격수 Y 씨도 연루됐다는 게 K 씨의 주장이다. 김동현과 Y 씨는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검찰이 김동현을 소환조사했고 Y 씨도 소환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창원지검은 26일 “일부에서 10여 명이 소환될 것이라고 하는데 10명이 될 수도 있고 100명이 될 수도 있다. 가능한 한 많은 선수를 소환조사하겠다”고 말해 K 씨의 주장처럼 승부조작이 K리그에 만연돼 있음을 암시했다. K 씨는 “선수들 사이엔 누가 승부조작에 참여하는지 다 알고 있다”고 전했다.

K 씨가 밝힌 일부러 져주는 승부조작 방법은 기상천외하다. 보이지 않는 손-조폭-행동대원-브로커-선수로 이어진 피라미드 구조에서 브로커들이 선수들의 신상정보를 활용해 학연과 지연으로 신분을 가장하거나 팬으로 위장해 비밀리에 접근한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공갈협박은 기본이고 꼬리가 밟히지 않게 ‘통장거래는 절대 하지 않는다’ ‘돈은 현금으로 차 트렁크에 넣고 다니며 쓴다’ ‘값비싼 차를 사지 마라’ 등 증거를 남기지 않는 기본 철칙을 만들어 지키게 한다. 골을 넣고 허용해 줄 수 있는 공격수와 수비수, 골키퍼가 포섭 대상이다. 이와 상관이 없는 미드필더는 거의 포섭하지 않는다.

일단 포섭이 되면 경기 때 실수나 어쩔 수 없는 것처럼 골을 허용한다. 골키퍼는 일부러 늦게 점프하거나 프리킥 상황에서 펀칭을 하지 않는다. 혼전 중에는 어쩔 수 없었던 것처럼 상대가 아닌 아군과 몸싸움을 한다. 수비수는 상대선수와 경합할 때 일부러 넘어진다. 또 오버래핑 나갔다 늦게 돌아온다. 상대 공격수와 미리 입을 맞췄을 경우에는 슈팅할 때 절묘하게 피한다. 공격수는 골을 넣을 상황에서 엉뚱한 곳으로 차고 마치 실수한 것처럼 제스처를 취한다. 승부조작의 온상 중국에서 오랫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이장수 광저우 감독은 “비디오로 한번 봐서는 모른다. 4번 정도 봐야 어떤 선수가 승부조작에 관여했는지를 알 수 있다”며 아주 교묘히 승부조작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승부조작으로 26일 구속된 성모 씨가 속했던 광주 FC의 최만희 감독은 “우리는 먼저 알아서 조치를 취해 다행이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최 감독은 4월 6일 부산과의 컵 대회 두 번째 경기를 앞두고 성 선수가 승부조작에 개입돼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추궁했더니 사실을 인정했다. 최 감독은 “첫 경기에서 강원에 0-5로 져 부산 경기에는 분위기 쇄신을 위해 그동안 안 뛰던 선수들을 넣으려고 했다. 성 선수도 뛰게 하려고 했는데 승부조작설이 있어 뺐다. 직접 물어봤더니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현찰로 2000만 원을 주면서 져달라고 했다고 했다”고 밝혔다.

당시 결과는 광주의 0-1 패배. 성 선수는 자신이 뛰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되돌려줬다고 했다. 최 감독은 “어찌 됐든 졌으니 안 돌려줘도 되는 것 아니냐며 농담까지 했는데 선수단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너하고는 함께 못 하겠다’며 방출시켰다.

최 감독은 “신생팀이라 가뜩이나 어려운 가운데 이런 일이 터져 참 곤혹스럽다. 어쨌든 벌어진 일이니 잘 수습해 K리그에서 승부조작이 사라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사실 증거가 남지 않게 교묘하게 승부조작을 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심증만 있더라도 그 선수를 빼고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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