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민심, 현장을 가다]<3>일자리 고갈에 돌아서는 청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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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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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알바 안해본 게 없지만… 등록금 빚더미의 백수로

올해 2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박모 씨(26·여)는 2009년부터 최근까지 입사원서만 90여 차례나 넣어 봤지만 모두 탈락했다. 박 씨는 졸업학점이 4.0을 넘고 재학 중 일본 교환학생 선발 때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우수한 인재. 재학 중에는 학교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취업을 위한 봉사활동도 학생 평균의 6배가량인 180시간 이상 했다.

하지만 취업은 딴 세상 얘기였다. 지난해 졸업했어야 할 박 씨는 재학생 신분을 유지해야 취업에 유리하다고 생각해 듣지도 않을 강의를 신청하면서 2학기나 버텼지만 ‘취업의 벽’은 여전히 너무 높았다.

이젠 벼랑까지 몰렸다고 생각하지만 ‘취업의 문’은 여전히 열리지 않고 있다. 현재 그는 창문도 없는 1평짜리 고시원 방에서 대낮에도 하릴없이 잔다. ‘왜 자느냐고? 네가 내 꼴 돼 봐라.’ 박 씨의 가슴엔 묻지도 않은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치민다.

○ 남은 건 빚뿐… 좌절에서 분노로


청년 실업이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각종 경제 지표가 호전되는데도 유독 청년 실업 문제만 좀처럼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은 △2007년 4월 7.6% △2008년 4월 7.4% △2009년 4월 8.0% △2010년 4월 8.4% △올해 4월 8.7%로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4월 실업률이 3.7%로 나타나는 등 전체 고용 사정은 조금씩 나아지지만 청년 실업률은 그 두 배인 8%대다. 취업자도 383만2000명으로 1년 전보다 7만3000명 감소했다.

최저생계비 보장과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청년유니온’을 만든 김영경 씨(31·여)는 청년 실업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1999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김 씨는 재학 중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학비를 벌어 학교를 다녔다. 학교 식당, 과외, 대형마트 아르바이트 등 안 해본 게 없을 정도. 하지만 2005년 학교를 졸업한 후 남은 건 학자금 대출금 1000만 원과 ‘청년 백수’ 딱지였다.

김 씨는 “취업은 개인의 문제란 것도 인정하지만 수십만 명의 청년이 같은 문제로 어려움에 처했다면 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청년유니온은 설립 당시 10명이었지만 현재 정회원 250명, 후원회원 120명, 카페 회원 3500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전국에 2명씩 27개 팀을 만들어 각 지방노동청에 정식 노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 고령에도 자식 뒷바라지하는 부모들


청년 실업은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들은 자식의 ‘취업’만 기다리며 고령에도 자녀 뒷바라지 때문에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경남 창원시의 김모 씨(55)는 지금 하는 멸치 포장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아들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아들은 2008년 한 지방대 영상학과를 졸업했지만 비정규직으로 여기저기를 전전할 뿐 번듯한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다. 김 씨는 “아들이 지난달 머뭇거리면서 ‘밖에 나가야 하는데 점심 값과 차비가 없다’고 해 10만 원을 보내줬다”며 “언제 아들 형편이 나아져 내가 일을 안 해도 될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아들 문제로 정부를 탓한다면 욕할지 모르나 미취업 기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결국 정부에 대한 원망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 대졸 실업자 사상 최대


7일 명동에서 청년유니온 회원을 중심으로 청년 구직자들이 ‘최저임금을 보장하라’란 캠페인을 벌였다. 이들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 같은 여론을 확산시켰다. 당시 트위터에는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도 최저임금도 못 받고 편의점에서나 아르바이트하고 있다” 등 분노의 글들이 순식간에 500여 개가 모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졸 이상 실업자는 34만6000명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0년 이후 가장 많았다. 2000년 당시 대졸 이상 실업자는 23만 명으로 불과 10년 만에 11만6000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2001년 23만3000명 △2002년 22만4000명 △2003년 25만3000명 등 꾸준히 증가 추세였지만 2008년까지는 20만 명 선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 등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2009년 32만1000명 등 대졸 이상 실업자는 30만 명을 넘어섰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실업 청년들은 사회활동을 할 수 없어 사회 불만 세력으로 바뀌기 쉽다”며 “특히 장년층 세대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신경 안 쓴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세대 간 갈등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기 때문에 청년들을 우선적으로 취업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고학력과 일자리 양극화의 수렁


정부를 비롯해 전문가들은 청년 실업의 주된 원인이 고학력화로 인한 ‘일자리 미스매치’에 있다고 본다.

실제 전체 청년 실업자의 3분의 2 이상이 대학 이상 학력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전체 청년 실업자 29만5000명 가운데 20만6000명이 대학 이상 학력을 가지고 있고 고졸 이하는 8만9000명에 불과했다. 이는 고학력화가 주된 원인이다. 1980년 27.2%에 불과하던 대학 진학률은 2000년대 중반 이후 80%를 웃돌고 있다. 취업이 주목적인 전문계고도 지난해 대학 진학률이 71.1%로 취업률(19.2%)의 3.7배 수준이었다.

대학 진학률은 급증했지만 청년들이 선호하는 대기업 정규직은 전체 일자리의 10% 남짓에 불과하다. 반면 중소기업은 여전히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기업 수의 99%에 이르고 고용의 88%를 책임지고 있다.

안양고용센터 정관수 취업지원과장은 “청년 구직자가 많이 찾아오지만 결정적으로 기업과 구직자 사이에 눈높이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일손을 찾는 중소기업들은 대졸이든 고졸이든 저렴한 임금의 구직자를 찾는 경우가 많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대졸 구직자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청년 실업자 증가와 하향 취업 등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은 당분간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선진국들의 해법 ▼

청년 실업률이 8.7%까지 치솟는 등 취업의 벽이 갈수록 높아지자 취업준비생들은 최저 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며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고 있다.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 거리에서 ‘최저임금을 지키라’며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 동아일보DB
청년 실업률이 8.7%까지 치솟는 등 취업의 벽이 갈수록 높아지자 취업준비생들은 최저 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며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고 있다.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 거리에서 ‘최저임금을 지키라’며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 동아일보DB
청년 일자리 만들기는 한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선진국은 일찍이 청년 실업률 낮추기를 역점 사업으로 삼고 지속적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 정치권이 미래의 중심축인 청년층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일자리 창출이 가장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1990년대부터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을 꾸준하게 다듬어 왔다. ‘청년을 위한 뉴딜정책’은 1998년 18∼24세 청년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6개월 이상 구직 급여를 신청한 청년 실업자는 의무적으로 이 프로그램에 등록해야 한다. 청년들은 1단계에서 지역별 직업센터에서 상담원을 만나 경력, 희망직업에 대해 논의해가면서 직업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직업을 못 구하면 2, 3단계로 넘어가 직업훈련과 직장체험으로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아낸다. 영국은 이 프로그램으로 2003년 말까지 48만여 명의 청년을 실업에서 구제했다.

영국 정부는 또 청년 실업 구제에 민간기업이나 지역사회, 각종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협업형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에 따라 14∼19세 구직자는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젊은 영국인 지원’ 캠페인에서 취업 지원 서비스를 받는다. 여기서 의무교육을 마친 청년은 지역사회의 보증을 받아 원하는 기업에서 직무실습을 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학업과 기업 현장교육을 병행하는 제도가 활발하다. 독일의 ‘도제 제도’는 다른 선진국에서 청년 실업의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독일 실업학교는 14∼17세 학생의 경우 의무적으로 학업과 기업체 현장교육을 병행하도록 한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원하는 기업체에서 약 3년간 국가가 인증하는 직업교육을 받는다. 이후 국가공인 자격증을 받아 구직에 활용한다. 네덜란드는 일반 의무교육을 17세까지로 한정하지만 학업과 직업을 병행하는 학생에게는 의무교육을 19세까지 보장해준다.

청년 실업자의 특성을 세분해 맞춤형으로 접근하는 노력도 눈길을 끈다. 호주는 개별 구직자의 정보를 수집해 구직자를 유형별로 구분한 ‘구직자 분류체계’를 1997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서원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유럽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는 ‘교육과 취업의 연계 프로그램’은 청년 개인에게 구직의 짐을 모두 떠넘기는 한국의 구직시스템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며 “차제에 유럽의 청년 구직 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해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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