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그림의 떡’이 그림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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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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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서울대 교수 ‘장애인용 갤럭시탭’과의 첫 만남

12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연구실에서 이 학교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가 블로 마우스로 삼성전자의 장애인용 갤럭시탭을 작동시키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2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연구실에서 이 학교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가 블로 마우스로 삼성전자의 장애인용 갤럭시탭을 작동시키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저, 이제 카페에 가서도 멋있어 보이겠죠? 원시인에서 현대인이 된 기분이에요.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 미국 뉴욕 애플스토어 앞에 긴 행렬이 생겼다면서요. 만약 삼성전자가 뉴욕에서 이 갤럭시탭을 판다면 전 세계 장애인들이 몰려와 더 긴 줄을 이룰 겁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 12일 처음으로 태블릿PC를 이용해 본 소감이다. 이 태블릿PC는 삼성전자가 지식경제부와 손잡고 최근 개발한 장애인용 갤럭시탭이다.

2006년 교통사고로 목 아래 부위가 마비된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49). 사고 8개월 만에 첨단 정보기술(IT) 기기의 도움을 받아 강단에 서면서 “나를 살린 것은 IT”라던 그였지만 요즘 ‘뜨는’ 태블릿PC를 접한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데스크톱과 달리 제품 역사가 짧은 모바일 기기엔 그동안 USB 포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가 평소 데스크톱에 사용하는 빨간색 블로 마우스(입김을 불어 작동시키는 마우스)를 태블릿PC에 연결할 수 없었던 이유다. “저는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제자들의 태블릿PC가 얄미워 보이기까지 했다니까요. 하하.”

이 교수는 지난해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하루 앞두고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아이폰이니 아이패드니 ‘터치’가 대세인데 나는 손을 못 움직이니 이 모든 게 그림의 떡”이라며 “전자제품에 마우스를 연결할 수 있는 USB 포트만 갖춰도 전신마비 장애인이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이 교수 같은 장애인을 위해 갤럭시탭에 USB 포트를 달았다. 근거리 무선통신(블루투스) 기능을 넣고,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판도 만들었다.

“지금까진 데스크톱이 저와 세상을 잇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하루 12시간 이상 데스크톱 앞에 앉아 연구도 하고, e메일도 쓰고, 인터넷 전화도 했습니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30분에 한 번씩 전동 휠체어 각도를 바꿔 주면서요. 이젠 이동하는 차 안에서나 침대에서도 태블릿PC로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바뀌고 각종 장애를 배려한 정보통신 기술이 개발되면 장애인 독서 인구가 크게 늘어날 겁니다.”

이 교수가 이날 사용해본 장애인용 갤럭시탭은 지식경제부가 지난해부터 4개년 계획으로 추진 중인 QoLT(Quality of Life Technology·삶의 질을 위한 기술) 사업 중 ‘장애인 접근권을 위한 유니버설 소프트웨어 인프라 개발’ 과제에서 나온 연구 결과다. 장애인과 노약자가 사용하기 편한 ‘인간적인’ 정보통신 기술을 만드는 게 목표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이 교수에게 시연한 제품은 아직 연구개발 단계라 제품 상용화 시기도 정하지 못했다. 삼성전자 측은 “장애인을 위한 정보통신 기술은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한 공동체의 문화적, 정치적, 환경적인 면들을 고려해 만들어진 기술)과 비슷한 성격”이라고 설명한다. 장애인, 더 넓게는 노약자에게 편안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차근차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 갤럭시탭을 써보면서 “애플과 노키아가 하지 않은 일을 삼성전자가 했다”며 싱글벙글했다. 제자에게 전화도 걸어보고, 자신의 이름을 검색 창에 넣어 보기도 했다.

“앞으로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으니 일이 더 많아지겠는걸요. 이러다 일의 노예가 되면 어쩌나요. 그런데도 기분이 참 좋네요. 장애인을 위한 기술이 개발되어서라기보다는 정부와 기업이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기 시작해서일 거예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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