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총독부, 족보까지 사전 검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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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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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항일 의병활동 흔적 지워가며 역사왜곡

심정섭 씨가 3일 공개한 조선총독부 총독 명의의 족보발간 허가증. 일제 검열관은 허가증을 내준 이후 진주 강씨 족보를 2년 정도 검열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심정섭 씨가 3일 공개한 조선총독부 총독 명의의 족보발간 허가증. 일제 검열관은 허가증을 내준 이후 진주 강씨 족보를 2년 정도 검열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일제는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가문의 족보까지 가위질했습니다.”

상하이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백강 조경한 선생의 외손자이자 구한말 의병 주촌(舟村) 심의선 선생의 증손자인 심정섭 씨(68·광주 북구 매곡동)는 3일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 등 역사 왜곡과 관련해 빛바랜 한 통의 엽서를 공개했다.

이 엽서는 1934년 8월 30일 전남 보성군 조성면에 사는 강모 씨가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 김모 검열관으로부터 받은 것. 가로 9.1cm, 세로 14.2cm 크기의 이 엽서에는 “진주 강씨 문중에서 신청한 족보인 진산세가를 1년 9개월 동안 살펴보고 보완작업을 해 발간을 허가한다”고 적혀 있다. 강씨 문중은 1932년 11월 30일과 1926년 8월 24일 조선총독부 총독으로부터 이미 족보 발간을 허가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도서과 검열관들이 2년 정도 족보 내용을 꼼꼼히 검열한 것.

심 씨는 “일제는 강씨 문중 족보에서 정유재란 당시 의병을 활동을 했으며 일본에 성리학을 전해주기도 한 강항 선생(1567∼1618)의 흔적을 지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강항 선생은 문집 등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왜구의 추장(왜추)이라고 평가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일제가 족보 검열과정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왜추’로 명기했는지, 또는 족보에 항일 표현이 담겨 있는지 등을 사전 검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일제는 3·1운동 이후 교묘하게 문화정치를 펼치면서 역사를 왜곡하고 민족혼을 통제했다”며 “이 엽서는 일제가 족보까지 검열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첫 자료”라고 강조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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