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1년/그 후, 지금은]<下>20대 ‘신안보세대’ 목소리 들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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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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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결과가 도발”… 대학생 토론 분위기부터 달랐다

22일 오전 9시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교양관 102호 강의실. ‘북한의 정치와 사회’ 강의가 시작됐다. “여러분 4일 후면 천안함 사태 1년입니다. 이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남광규 교수의 즉석 제안에 학생들이 각자의 의견을 내놓았다.

학생들의 의견은 기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한때 친북 세력의 온상이었고 대북 유화정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일반적이던 과거의 대학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그동안 군의 행태와 정부의 허술한 논리를 볼 때 의혹이 완전히 씻겨지지 않았다”는 의견(법학과 4학년 김준설)도 나왔지만 천안함 사태가 북한의 소행임을 부인하는 주장은 전혀 없었다.

학생들은 천안함 사태가 북한의 폭침이라는 전제 아래 의혹을 증폭시킨 사회적 풍토를 개탄했다. 나아가 일부 정치권과 언론을 질책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대처가 안이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경영학과 3학년 이영욱=객관적 조사보다 ‘∼카더라’는 의혹이 사회에 퍼져 있었다. 전문가들의 객관적 조사를 기다리기보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들이 마구잡이로 옮겨졌다. 광우병 사태와 마찬가지였다. 다국적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도 불신했다. 조사단 안에서 이견이 있다더라, 이렇게 의심을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통계학과 1학년 황도영=제일 실망한 것은 정치와 언론이다. 국민의 생명과 국방이 직결된 문제인데 어떻게 그렇게 이용할 수 있나. 내부를 분열시켜서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려 했다.

▽인문학부 1학년 윤세정
=일부 언론은 제대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 지방선거에 영향을 끼치려고 의도했다. KAL기 폭파 사건도 일부 언론이 논란을 부추겼는데 사실로 드러났다. 천안함 사태도 책임져야 할 언론이 있다.

▽법학과 4학년 김명주=합조단 결과를 유엔에 보냈는데 당시 몇몇 국회의원과 단체가 의혹을 제기하는 서한을 보냈다. 유엔에서 국민의 합의도 안 돼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결의안을 채택하겠나.

▽국제학과 2학년 김세정=정부가 너무 아마추어로 대응을 하더라. 확답을 내놓지 못해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단지 북한이 그랬다고 반복하며 이념 대결적으로 끌고 갔다. 비록 정부가 하는 말이 정당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수준을 감안해 충분한 정보를 주며 설득했어야 했다.

대북 정책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은 강경했다. 북한의 도발에 확실한 응징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나라와 이웃을 지키려던 우리 군인이 죽었는데,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니냐. 이웃집 개가 죽어도 이렇게 간과하지 않는다”는 예비역 복학생의 발언에는 박수가 나왔다.

▽일어일문학과 2학년 김태건=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은 북한이 3대 세습을 안정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해 벌인 짓이다. 지난 10년 동안 햇볕이니 뭐니 해서 북한에 유화정책을 폈지만 결과는 연평해전과 핵실험이었다. 지난 정부 때는 그것이 충분히 다뤄지지 못하고 가려져 있었지만 북한은 끊임없이 도발했다. 그들은 유화정책으로 다룰 수 없는 존재다.

▽경영학과 2학년 김도영=북한이 도발하면 도발 원점에 대해서는 철저한 응징을 해야 한다. 도발로는 어떠한 이익도 얻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줘야 한다.

당초 남 교수는 천안함 사태의 원인에 대한 의견 조사를 하려 했으나 그만뒀다. 남 교수는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이미 결론은 나 있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학 교정 ‘47용사 추모’ 현수막 천안함 폭침 1년을 사흘 앞둔 23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천안함 47용사를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쓰인 대학생추모위원회의 현수막을 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대학 교정 ‘47용사 추모’ 현수막 천안함 폭침 1년을 사흘 앞둔 23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천안함 47용사를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쓰인 대학생추모위원회의 현수막을 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강의가 끝난 뒤 한 학생이 기자에게 다가와 “오늘 강의가 너무 일방적이었는데 들은 얘기가 학생 전체의 의견은 아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학생도 있는데, 분위기상 말을 공개적으로 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천안함 사태에 대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분위기가 대학 안에 형성됐다는 것으로 들렸다.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 이후 한국사회에 20대를 중심으로 강경한 대북정책을 주장하는 ‘신(新)안보세대’가 등장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실제로 대학 강의실에서 만난 20대의 변화는 이처럼 상아탑 의식의 지형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천안함 사태 후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의 주기적인 심술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북한을 관리 가능한 걱정거리로 간주했지만, 천안함 사건은 이런 시각에 상당히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천안함 사태 이전과 이후의 여론조사를 비교해 보면 이러한 인식은 극명하게 나타난다. 행정안전부 조사에 따르면 천안함 사태 전인 2009년 6월에는 “북한은 경계 또는 적대 대상”이라는 응답은 39%뿐이지만 사태 후인 지난해 6월에는 61%로 상승했다.

지난해 10월 1.57 대 1이던 해병대 입대 경쟁률은 연평도 도발 이후 꾸준히 상승했고, 1월 육군의 모집병 지원율(4.5 대 1)과 공군 지원율(5.4 대 1)도 기존 기록을 경신하는 등 군 복무에 대한 의식도 크게 달라졌다.

남 교수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를 거치며 국민들이 북한은 ‘선량한 이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체험했다. 6·25전쟁을 겪은 세대와 겪지 않은 세대의 대북관이 다르듯이 현재 나타나는 강경한 대북의식과 안보의식은 한동안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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