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못만들고 떠난 동물원 큰할아버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2일 14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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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물원 로랜드 고릴라 ‘고리롱’ 사망

지난해 2세를 가지기 위해 일명 '야동'이라 불리는 포르노 비디오를 보고 발기부전 치료제를 먹어 화제가 됐던 서울동물원 로랜드고릴라 '고리롱'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3년 생(추정)으로 고리롱의 올해 나이는 48세. 고릴라의 평균 수명이 30~40년인 것을 감안하면 사람 나이 80~90세 격인 '할아버지'다. 서울동물원 관계자는 "지난달 20일부터 힘없이 비틀거리는 등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며 "17일 오후 8시 10분 경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1968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온 고리롱은 서울동물원의 전신인 '창경원' 시절부터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서울동물원에서 사는 동물 중 갈라파고스 코끼리 거북이(106세) 다음으로 나이가 많아 '큰 할아버지'로 불렸다.

고리롱은 2세를 남기지 못하고 떠났다. 로랜드고릴라가 국제 멸종위기종인 터라 동물원 측은 2세 만들기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고리롱이 '짝' 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1968년 고리롱과 함께 창경원에 들어온 암컷 로랜드고릴라가 5년 후 세상을 떠나자 고리롱은 10년 넘게 혼자서 지냈다. 그 후 1984년 같은 고향 출신인 1978년 생 암컷 로랜드고릴라 한 마리가 새로 들어왔다. 동물원은 새로운 암컷에게 죽은 첫 짝의 이름 '고리나'를 그대로 붙여주었다. 하지만 몸집이 크고 난폭한 습성 탓에 고리롱과 고리나는 창살을 사이에 두고 2004년까지 각방을 써야 했다.

합방 후에는 고리롱에게 문제가 생겼다. 창경원 시절 쥐벼룩에 물린 발가락이 곪아 썩어 발가락을 절단해야 했다. 오른쪽 가운데 발가락을 남기고 9개 발가락을 절단했다. 오른손 중지 손가락, 왼손 약지 손가락도 잘라야 했다. 몸이 불편하다보니 움직임은 자연스레 둔해졌다. 박현탁 서울동물원 사육사는 "가끔 아내 고리나가 나뭇가지를 머리에 꽂고 몸을 부비는 등 고리롱에게 애정공세를 펼치기도 했지만 고리롱은 눈만 껌뻑였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강남 차병원 비뇨기과팀과 함께 2세 갖기 프로젝트도 가졌다. 고릴라 애정행위를 담은 '고릴라 포르노' 영상물을 틀어줬고 발기부전 치료제 '시알리스'도 먹였다. 그러나 늙어서 거동이 불편한 고리롱에게 효과는 없었다.

동물원은 죽은 고리롱의 2세를 만들어주기 위해 인공수정을 검토 중이다. 고리롱의 고환을 떼어 그 속에 남은 정자를 이용해 고리나에게 인공수정을 시도하는 것. 그러나 동물원 관계자는 "인공수정 확률은 현재로선 아주 희박한 편"이라며 "다른 나라에서 로랜드고릴라를 수입해 오는 것도 멸종 위기종이다보니 10억 원이 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동물원은 고리롱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다음달 말까지 각종 축제 및 행사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고리롱의 표피와 골격은 표본 및 박제 처리해 6개월 후 관람객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동영상=17일 4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서울동물원 로랜드고릴라 ‘고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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