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 20년’ 경험에서 배운다]<2>세계의 엔진으로 부활하는 통독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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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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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의 ‘병든 공장도시’ 다국적기업이 싹 개조

‘공해 도시’ 오명 벗은 라이프치히 독일 라이프치히의 중앙독일방송국(MDR) 건물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가운데 보이는 교회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촉발한 평화 기도회가 열렸던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다. 고풍스러운 시내 건물과 도시 주변의 짙푸른 숲이 어울려 ‘전원 속의 궁전’을 연상케 한다. 라이프치히=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공해 도시’ 오명 벗은 라이프치히 독일 라이프치히의 중앙독일방송국(MDR) 건물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가운데 보이는 교회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촉발한 평화 기도회가 열렸던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다. 고풍스러운 시내 건물과 도시 주변의 짙푸른 숲이 어울려 ‘전원 속의 궁전’을 연상케 한다. 라이프치히=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 15일 오전 독일 베를린에서 약 175km 떨어진 동독지역 라이프치히로 가는 4차로 아우토반은 깔끔하게 단장된 모습이 서독지역의 도로 못지않았다. 독일이 통일 후 가장 먼저 착수한 동독 재건사업은 ‘독일 통일(Deutsche Einheit)’이라는 이름의 아우토반과 고속철도 건설사업이었다. 폴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 번호판을 탄 승용차가 빠른 속도로 추월해 지나갔다. 》
2시간여 지나 도착한 인구 53만여 명의 라이프치히는 마치 숲으로 둘러싸인 ‘전원 속의 궁전’처럼 느껴졌다. 화강암으로 만든 고풍스러운 건물이 즐비한 도심은 통일 이전 공해에 찌든 도시였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라이프치히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인구 73만 명이 사는 도시로 ‘유럽의 심장(Heart of Europe)’으로 불렸다. 하지만 전쟁 중 폐허가 됐고 동독 시절 공해도시로 전락했다. 통독 직후에는 실업률이 20%를 넘었고 10만 명이 도시를 떠났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5만∼6만 명이 다시 되돌아왔고 실업률은 14%로 낮아졌다.”

부르크하르트 융 라이프치히 시장은 “통독 20년 만에 라이프치히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며 장시간에 걸쳐 성과를 자랑했다. 융 시장은 “최근 DHL 자회사가 브뤼셀에서 이곳으로 본사를 옮겼고 BMW 역시 2001년 이곳에 공장을 차렸다”며 “이런 성과로 최근 여론조사 결과 라이프치히 시민의 75%가 독일 통일을 자랑스러워한다고 답변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통일 이후 동독지역 경제의 발전은 비약적이다. 1991년 9442유로에 불과했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8년 2만2840유로(2.4배)로 늘었다. 반면 서독지역은 같은 기간 2만2030유로에서 3만2231유로(1.46배)로 느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2.3배에 이르던 동서독 소득 격차도 최근엔 1.4배로 줄어들었다.
양 지역의 소득 격차는 최근에도 매년 1%포인트씩 줄어들고 있다. 통일 직후 20%까지 치솟았던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과거의 절반 수준인 11.8%까지 내려왔다. 물론 서독의 6.0% 수준과는 아직 격차가 많지만 적잖은 향상이다.

동독지역 할레 시 화학공업단지에도 여기저기에 높은 굴뚝들이 보였다. 동독 시절 덩치만 크고 효율성이 없어 병든 환자 같았던 공장들을 다국적기업인 다우케미컬이 인수해 불필요한 건물과 시설은 뜯어내고 정비해 친환경 화학공업단지로 바꿨다. 거대하고 복잡한 공장지대 군데군데 푸른 잔디와 녹색정원이 조성돼 있었다. 통일 이후 이들 인수기업의 구조조정을 담당했던 크리스토프 밀하우스 전 다우케미컬 사장은 “통일 전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했던 공장들이 이제 유럽 각 나라로 수출하는 경쟁력 있는 공장이 됐다”고 말했다.

통독 20년의 경제적 성과에 대해 독일인들은 매우 만족해하는 분위기였다. 동독지역인 비텐베르크에서 태어난 미하엘 슈비프스 씨(35·회사원)는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나는 열네 살로 사실 통일이 뭔지도 제대로 몰랐다”며 “하지만 통일된 덕분에 내가 현재 직장에서 만족할 만한 월급을 받고 있고 또 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간 것을 보면서 통일이 잘 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독에서 태어나 라이프치히에서 컴퓨터 수리회사를 운영하는 하인츠 슐라우트쾨테 씨(57)는 “통일 이후 20년간 동독 지역 지원을 위해 내 호주머니에서 엄청난 세금이 빠져나갔지만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개인마다 컴퓨터를 가질 정도로 부유해진 동독지역의 주민들이 이제는 내 회사로 와 수리를 맡겨 나에게 보답할 때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동독 지역이 이처럼 비약적 발전을 한 것은 독일 정부가 막대한 통일 비용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매년 동독 지역에 이전되는 지원금은 전체 독일 GDP의 3∼4%에 이른다. 그러나 에르푸르트 주정부의 바이체크 경제노동인구국장은 “동독지역을 재건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갔지만 동독 주민을 위한 일자리가 생겨 지역경제가 활성화됐다”며 “통일비용을 나중에 수익이 돌아오는 투자 또는 재건비용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라이프치히·베를린=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도움말=서재진 통일연구원장

▼ 獨, 2500조원 통일비용에 휘청… 타산지석 어떻게? ▼
국고 적립금 - 국내외 민간투자 있어야 든든


“통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독일 외교부의 한스 크리스티안 라이프니츠 공보국장은 17일 이렇게 말했다. 서독은 우연히 찾아온 통일의 기회를 잡기 위해 소련에 엄청난 돈을 줘야 했고 동독 경제를 재건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었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독일 통일이 이뤄진 1990년 이후 2009년까지 서독지역에서 동독지역으로 이전된 비용은 2조 유로(약 3060조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동독지역에서 연방재정으로 되돌아가는 세금과 사회보장비 등을 제외한 순이전액은 1조6200억 유로(약 2478조6000억 원)가량이다. 독일은 통일기금, 채무청산기금, 연대협약에 의한 연대세 등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비용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통일을 맞았기 때문에 독일은 지금도 국가부채 누적, 세금 인상 등에 따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국내 및 해외 민간 분야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세 등 통일재원 마련을 제안한 것은 우선 미리 통일 재원을 마련해 통일 이후 우리 경제가 한꺼번에 받을 충격을 완화하자는 취지이다. 현재 정부는 연도별로 1조 원 이상씩 국고에서 배정되는 남북협력기금 불용액을 적립해 통일재원으로 비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 당국자는 “협력기금 불용액으로 5조 원 정도만 적립해두면 북한 급변사태 등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때 식량 지원 등을 통해 초기대응을 하는 데 충분하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국내 비용 조달 방법으로 세금 부과와 국채 발행을 고려하고 있다. 세금이 현 세대가 부담하는 것이라면 국채는 미래 세대의 빚이다. 국채는 손쉽게 돈을 모으는 방법이긴 하지만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의 실패를 교훈 삼아 국내 및 해외의 민간 투자 유치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관 기획재정부 국채과장은 “세계 투자자들에게 통일 후 북한에는 그야말로 ‘큰 장’이 서는 셈”이라며 “모든 비용을 혼자 조달하려다 낭패를 본 서독의 예를 타산지석 삼아 북한에 투자할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개발자금을 활발하게 유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간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의 진전 정도를 보아가며 현지 사회간접자본(SOC)에 미리 투자를 하고 북한의 전력 상황이나 도로, 댐과 같은 세부적인 경제 시설에 대해 유의미한 통계 인프라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 |기고| 동독 근로자 ‘묻지마 임금인상’ 부작용 컸다▼

독일에서 통일비용을 높아지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노동시장 통합이었다. 통일로 동독지역 근로자들이 서독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자 동독지역 임금이 아무런 생산성 향상 없이 서독지역 임금 수준을 향해 급속히 상승했다.

여기에 더해 동독지역의 임금 상승을 부추긴 요인이 두 가지 더 있었다. 통독 정부는 동서독 마르크를 1 대 1로 화폐 통합을 해 동독지역의 실질임금이 한꺼번에 네 배로 오르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음은 서독 노동조합의 동독 진출이었다. 서독지역의 임금 하락을 두려워한 서독지역 노동조합에서 동독지역으로 대표들을 파견해 노조가 없는 동독 근로자들을 대신해 임금투쟁에 나섰다.

그 결과 생산성 향상과 관련 없이 매년 동독지역 임금을 단계적으로 서독지역 임금에 수렴해 가도록 하는 합의가 이뤄졌다. 정치적 고려에 따른 이런 잘못된 조치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동독지역 근로자들의 임금은 생산성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근로자 임금이 생산물 가치보다 높아지면 기업들은 더는 그 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대량 해고를 했고 통일 후 반년 만에 동독지역 실업률이 40%를 넘어섰다. 결국 국가가 이들을 먹여 살려야 했고 사회보장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임금이 높아져 민간투자가 유입되지 않자 정부가 부담할 통일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결국 한국의 통일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 통합을 막는 일이다. 남북이 정치적으로 통합되고 나면 물리적으로 노동시장 통합을 막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인센티브를 통해 북한 주민들이 북한지역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토지와 가옥을 통일 후 일정 기간 북한지역에 머무는 주민에게만 분배한다면 좋은 인센티브가 될 것이다.

또 임금을 왜곡시킬 수 있는 통합정책을 피해야 한다. 화폐 통합 시 임금 전환 비율을 정부가 결정해 줄 필요가 없다. 시장에 맡기면 된다. 노조 활동에 대해서도 남한과 북한은 달리 적용돼야 한다. 북한 지역에 시장 기능이 작동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합리적인 수준에서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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