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선진국’을 향해]<中>활발해지는 ‘재능’ 공헌

동아일보 입력 2010-09-16 03:00수정 2010-09-16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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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좀 살렸을 뿐인데… ‘키다리 아저씨’ 기업들
성장호르몬 지원증서와 화분을 선물로 받은 어린이와 보호자(왼쪽), 강유식 ㈜LG 부회장이 환하게 웃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LG그룹
가정형편이 어려워 사회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방모 군(13)은 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1번을 도맡을 정도로 키가 작아 친구들에게서 놀림을 받고 의기소침하게 지낼 때가 많았다. 그러나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방 군은 최근 1년 사이 13cm가 커 이제는 반에서 중간 정도의 키를 자랑한다. 소심하던 성격도 활달하게 바뀌었다.

LG복지재단과 제약회사인 LG생명과학이 지난해부터 값비싼 성장호르몬 주사를 무료로 처방해줬기 때문이다. 이 단체들은 1995년부터 저소득층 성장장애 어린이 500명에게 성장호르몬제를 지원했다. 방 군이 지내는 복지시설의 김효숙 선생님은 “방 군의 생활태도가 활기차게 바뀌어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며 안도했다.

경기 여주군에 있는 예비 사회적 기업인 신륵노인복지센터는 주부들을 고용해 불우이웃에게 밑반찬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는데 매출이 늘지 않아 고민이었다. 정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으려면 매출이 어느 정도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회원수가 늘지 않았던 것. 이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특급호텔 조리사들이 팔을 걷고 나서면서 이 센터는 활기를 찾았다. 워커힐호텔 조리장 10여 명은 지난해 12월부터 매달 돌아가며 복지센터를 방문해 메뉴 개발을 돕고 요리 비법도 전수하고 있다. 복지센터 직원들은 “가정용 프라이팬 2개로 하루 종일 전을 부치다가 전문가들이 주방용품부터 요리정보까지 알려줘 막혔던 속이 뚫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특기’를, 직원들은 ‘재능’을 살린 나눔 활동이 활발하다. 기업과 직원들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특성을 살리고, 수혜자들은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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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들의 ‘특기’ 공헌

매일유업은 1999년 국내에서 유일하게 선천성대사이상질환인 페닐케톤뇨증(PKU)을 앓는 아동들을 위한 특수분유 8종을 개발했다. PKU는 단백질이 소화되지 않고 체내에 쌓여 정신지체나 성장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병이다. 특수분유가 필요한 국내 PKU 환자는 200여 명으로 수요가 많지 않아 만들수록 손해다. 연간 2500캔 정도의 특수분유가 팔리는데 소량 생산이 불가능한 탓에 한 해 2만 캔을 생산해 매년 1만7500캔을 폐기 처분하고 있다. 그럼에도 매일유업은 10년 넘게 특수분유를 생산하고 있다.

24개월짜리 아들을 둔 김수정 씨(37)는 “모유를 먹였는데 여러 검사로 PKU 진단을 받은 뒤 모유를 끊어야 해 울기도 많이 울었다”면서 “특수분유는 PKU 환자가 평생 먹어야 하는 ‘생명의 양식’으로 특수분유가 없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 직원들의 ‘재능’ 기부

SK그룹의 프로보노인 ‘서울 전통문화체험관’팀이 서울 종로구 계동 북촌한옥마을에서 한옥마을을 전통문화체험 특화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한 컨설팅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SK그룹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기술이나 자격 등의 재능을 기부하기도 한다. LG전자에서는 ‘Life’s Good 자원봉사단’ 30개 팀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30개 팀은 회사가 공모를 통해 추려낸 경쟁력 있는 봉사단으로 운영비의 일부를 회사가 지원한다. 이 가운데 ‘불우한 아이들에게도 교육 기회를’이란 팀은 매주 지역 아동센터를 찾아 어린이들에게 학습지도를 하고 있다. 팀장인 이원희 차장은 “5명의 팀원이 영어 수학 과학 과목을 지도하고, 미술 교사인 아내를 동원해 전문 미술 교육까지 하고 있다”고 전했다.

SK그룹도 지난해 전문 자격과 기술을 가진 직원들로 구성된 ‘프로보노’ 봉사단체를 출범시켰다. 변호사 회계사 등과 같은 전문 자격부터 영어 정보기술(IT) 행사진행 휠체어수리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직원들이 사회적 기업이나 비정부기구(NGO)를 찾아가 전문적인 컨설팅을 하거나 이들이 원하는 기술을 지원한다. 또 삼성전자는 문화예술, 교육치료 환경개선 등 봉사를 위해 800여 명이 28개의 전문 봉사팀을 조직해 활동한다.

○ 기업이윤을 나눔 기부로 전환

유한양행의 최대주주는 공익법인 유한재단, 3대 주주는 유한학원이다. 두 법인은 유한양행 창립자 고 유일한 박사의 주식 기부로 유한양행의 대주주가 됐다. 회사 지분 22.96%를 가진 두 법인은 배당금을 받아 사회공헌활동에 사용하고 회사는 높은 비율의 배당 정책을 고수하는 방법으로 기업의 이윤이 사회공헌에 쓰이도록 일조한다.

현대오일뱅크도 시스템을 통해 기부를 정례화하고 있다. 임직원들이 받는 급여 중 1만 원 미만을 자동 기부하는 ‘급여 우수리’ 제도를 통해서다. 회사는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에 같은 금액을 보태 매년 복지단체에 보낸다.

신세계백화점은 어린이재단과 함께 ‘희망배달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역시 임직원들이 급여에서 일정 부분을 떼 기부하면 회사가 같은 금액만큼 적립해 마련한다. 롯데백화점도 직원들이 모은 기금액만큼 회사가 돈을 내 소외 이웃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 쓰고 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 더 어려운 이들을 돕는 사람들… 나눔에 나눔으로 보답 ▼
‘기부천사’ 차보석 할머니, 전셋집 생기던 날

어려운 살림에도 꾸준히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기부를 해 온 차보석 할머니(77·오른쪽)가 15일 CJ그룹의 도움으로 구한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전셋집 앞에서 직원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월수입 20만8000원 중 1만 원을 다달이 저소득아동 교육사업에 기부해 온 차보석 할머니(77)가 올해 추석은 집 걱정 없이 보낼 수 있게 됐다.

▶본보 7월 22일자 A27면 참조
한달 총수입 20만8000원… 3년째 매달 1만원 기부


▶본보 7월 31일자 12면 참조
한 팔 없이 홀로사는 할머니에게 손목시계를…청와대의 ‘무개념 선물


오른쪽 팔이 없는 차 할머니는 장애연금 12만 원과 노령연금 8만8000원의 수입 중 매달 1만 원씩을 3년째 소외 아동들의 교육환경 개선사업을 하는 CJ나눔재단의 온라인 기부사이트 ‘CJ도너스캠프’에 기부하고 있다. 자신의 처지와 상관없이 기부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차 할머니에게도 남모를 고민이 하나 있었다. 현재 살고 있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16.5m²(약 5평) 남짓한 방을 이달 말까지 비워줘야 했다.

차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과 함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CJ그룹 임직원들은 자발적으로 모금에 나섰다. 온라인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모금 제안글을 계기로 시작된 모금운동에는 총 1354명이 참가해 3000만 원이 모아졌다. 300만 원을 쾌척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도 있었지만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1만∼3만 원을 기부해 모은 돈이었다. CJ나눔재단은 이 돈으로 상도동에 전셋집을 얻어 할머니를 모시기로 했다.

▲동영상=할머니의 집걱정 없는 추석


“이거 참 고마워서 어떡하나. 내가 괜히 젊은 양반들한테 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해 죽겠네.” 15일 집에서 만난 차 할머니는 이사를 앞두고 설레는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추석 직후인 27일 CJ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이사를 할 예정이다. 김민지 CJ나눔재단 과장은 “할머니 사연을 보고 코끝이 찡했다”며 “당초 1000만 원 정도 모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훨씬 많은 돈이 모여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할머니에게 안성맞춤인 집을 고르는 일에도 많은 정성이 들어갔다. 직원들은 12곳이 넘는 부동산업체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할머니에게 꼭 맞는 집을 찾아냈다. 전순달 CJ그룹 홍보실 대리는 “할머니가 다니시기 불편하지 않도록 계단이 많거나 반지하에 있는 방들은 피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고른 집은 파란 대문에 작은 텃밭이 딸린 집이었다. 마루와 부엌, 방 2개가 있다. 이날 기자에게 새집을 소개해준 할머니에게선 신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 텃밭에는 상추도 기르고, 내가 예전에 그렇게 좋아했던 국화꽃도 심을 거야.”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가진것 없지만 ‘나눔 부자’들
고시원 생활 배달원도… 정부 보조받는 아주머니도…

“나눔이란 게 많이 가진 사람들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동안 받았던 것들, 조금이라도 나누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김우수 씨(43)는 ‘중국집’ 배달원이다. 한 달에 월급을 70만 원 정도 받는다. 혼자 누울 만한 고시원 방에 가족도 없이 홀로 산다. 겉보기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그는 부자다. 김 씨는 “내가 먼저 나누며 알게 된 사람들이 모두 나의 재산”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2006년부터 4년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 국내외 어린이 5명을 지원하고 있다. 일인당 2만 원씩 10만 원을 매달 보내 준다. 그는 “내가 고아로 자라 어려울 때마다 세상 도움을 받았다”며 “이제 다시 돌려줄 차례”라고 말했다. 김 씨는 1998년에는 장기기증서약을 했고, 2년 전부터는 어린이들을 위한 생명보험에도 가입했다.

국내 기부 문화가 점차 성숙해지며 기부 받던 사람이 기부자로 성장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복지시설 어린이들이 이웃돕기 성금을 기탁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대전 유성구의 아동복지시설 천양원 어린이들은 지난해 12월 28일 함께 모은 50만8850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전지회에 기탁했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인 김진숙 씨(50·여) 역시 보조받은 금액을 쪼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정기 후원을 하고 있다. 월세 20만 원 집에 사는 김 씨는 “비록 한 달에 1만 원이라는 작은 금액이지만 나눌 수 있어 행복을 느낀다”며 “조금 더 많은 사람이 가진 것을 함께 나누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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