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초등생 엄마가 바빠졌다

동아일보 입력 2010-09-14 03:00수정 2010-09-1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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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대학 입시에 자기주도학습전형 도입
독서·독후활동 지도위해 도서관 방문은 기본… 각종 정보찾아 ‘인터넷달인’ 된 엄마도
그래픽 임은혜 happymune@donga.com
《최근 ‘자기주도 학습’이 입시와 교육정책의 화두가 되면서 초등학생들이 직장인만큼이나 바빠졌다. 이유는 ‘비교과 활동’ 때문이다. 봉사활동, 체험활동, 독서이력으로 구성되는 비교과 활동은 요즘 대입은 물론이고 국제중이나 특목고 입시에서 속속 도입하고 있는 자기주도학습전형의 가장 중요한 평가대상인 것.

당초 자기주도 학습전형은 학생들이 사교육 없이 스스로 공부할 능력을 기르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적잖은 학생과 학부모는 봉사, 체험, 독서라는 ‘과목’이 기존 교과목에 추가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초등학생들이 자신의 독서활동이력을 인터넷으로 직접 기입하고 관리할 수 있는 ‘독서교육지원시스템’(www.reading.go.kr)이 2학기부터 가동되었고 내년부터는 봉사, 체험활동을 초등생들이 직접 써넣는 ‘창의적체험활동 종합지원시스템’(www.edupot.go.kr)도 가동될 전망이어서 초등생들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여기에다 최근 학교생활기록부의 기재방식이 바뀐 점도 초등생과 학부모들에게 ‘설상가상’의 사건으로 다가온다. 학생부에서 교과 성적만큼이나 중시되는 수상실적은 자기주도학습전형에서 눈여겨보는 평가요소인데 내년부터는 교외(校外) 수상실적을 기재할 수 없게 됨에 따라 한층 경쟁률이 높아진 교내대회에서 수상해 실적을 쌓아야만 하게 된 것이다. 결국 자기주도 학습을 중시하는 교육정책의 변화는 기존 상위권뿐 아니라 중위권 초등생들에게까지 포트폴리오(혹은 스펙) 관리에 대한 스트레스로 연결되면서 ‘바빠진 초등생들’과 더불어 ‘더욱 바빠진 엄마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주도학습전형의 중요한 평가요소인 독서이력을 인터넷상에서 직접 기록할 수 있는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이 2학기부터 가동됐다.(왼쪽) 초등생 학부모는 자녀의 남다른 봉사, 체험, 독서활동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학원 설명회를 찾는 등 분주해졌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초등 4학년 딸과 6학년 아들을 둔 주부 이모 씨(40·서울 구로구)는 도서관 회원증만 다섯 개를 갖고 있다. 거주지의 구립도서관과 이웃 구의 구립 어린이도서관, 마을 도서관,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과 학교 도서관의 회원이다. 이 씨는 “학교 선생님께서 독서교육지원시스템에 가입하고 독후감을 올리라고 하셨다”면서 “이 기록이 아이가 대학갈 때 참고자료로 쓰일 수 있다고 하니 더욱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이 씨는 지난 여름방학 때 읽은 책의 독후활동을 독서교육지원시스템에 기록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초등학교 때 쓴 독후감을 대학 입학사정관까지 볼 수 있다는 기사를 본 후엔 더욱 공을 들인다. 입학사정관 전형에선 관심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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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최근 아이의 진로에 맞는 책을 찾느라 도서관을 더 자주 찾는다. 인근 도서관에 없는 영어 원서는 서울 종로구의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에 가서 빌려온다. 그는 “예전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자유롭게 읽도록 했다면 요즘엔 아이가 관심을 갖는 유엔과 환경 관련 책을 찾아 읽히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독서교육지원시스템에 독후감, 편지, 일기쓰기 방식으로 함께 글을 올린다”고 말했다.

이는 일부 극성 엄마의 이야기가 아니다. 각종 교육 시스템이 정책적으로 학교 차원에서 실시되자 평범한 학부모까지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초등생이라면 학교와 학원 공부면 충분하다는 것은 옛말이다.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독서와 봉사활동 이력을 강조하고 교내 경시대회 수상실적을 반영하겠다는 방침은 좋은 취지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것이 고교나 대학 입학사정관전형의 새로운 열쇠로 부각되면서 ‘스펙 쌓기’로 변질되는 것이 문제다. 엄마들 사이에선 평범해 보이는 독서와 봉사활동을 뭔가 특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과 신경 쓰지 않으면 내 아이만 뒤처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고민이 아이의 활동을 엄마의 과제로 만들었다.

초등 2학년 딸과 4학년 아들을 둔 조모 씨(40·경기 수원시)는 자녀교육을 위해 최근 회사를 그만뒀다. 조 씨는 “학생부에 교외 수상실적이 반영되지 않자 교내 경시의 경쟁이 무척 치열해졌다”면서 “교내 수상이나 독서, 봉사활동은 학원만 보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 손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설 교육업체에서 주최하는 경시대회나 각종 올림피아드대회는 실력대로 점수를 얻고 상을 받는다. 열심히 공부를 시키는 것으로 충분했다. 아이가 흥미가 없으면 시키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교내상은 달랐다. 조 씨는 “교내 독후감쓰기대회, 과학탐구경진대회, 한자경시대회 등은 엄마가 신경을 쓰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조 씨의 딸 A 양은 같은 반 친구 B 양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매우 좋아하는 B 양은 늘 책을 붙들고 있고 읽는 책 수준도, 이해하는 수준도 매우 높다. 하지만 교내 독서기록장 대회에선 A 양이 상을 받았다. B 양의 어머니는 ‘직장맘’이라 신경 쓸 겨를이 없기 때문. 조 씨는 이미 독서교육지원시스템에 가입해 딸의 독후활동을 돕고 있지만 B 양의 어머니는 이런 사이트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조 씨는 “진짜 독서를 좋아하는 아이라도 엄마가 신경을 못 쓰면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이든 교내대회든 아무 기록도 남길 수 없다”고 꼬집었다. 교내 수상실적이 중요해지면서 일부 초중학교에선 새로운 교내대회가 늘었다. 더 많은 학생에게 수상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특별한 봉사활동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눈에 띈다. 식상한 봉사활동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자 아이디어를 짜는 것. 초등 4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 박모 씨(40·여·서울 영등포구)는 최근 마음이 맞는 몇몇 학부모와 봉사 모임을 결성했다. 안 쓰는 학용품을 모아서 보육원에 전달했다. 아이들은 모임의 회의를 진행하고 교내 학용품 모으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하지만 회의록을 만들고 활동과정을 일일이 사진으로 남기는 것, 활동후기 기록을 돕는 것은 엄마의 몫이다.

변화는 평범한 엄마를 ‘인터넷 달인’으로 만들었다. 정보를 가장 손쉽게 얻는 통로는 온라인 커뮤니티다. 공부방을 운영하며 초등생인 두 자녀를 키우는 박진영 씨(40·경기 남양주시)의 컴퓨터는 24시간 켜져있다. 매일 들여다보는 교육정보 커뮤니티만 10개. 여기에서 독후활동 작성법, 체험활동 정보 등을 얻는다.

경시대회 정보는 학교 홈페이지에 더 많다. 박 씨는 자녀의 학교 홈페이지를 기본으로 인근 학교 홈페이지 3, 4곳을 매일 들른다. 학교마다 홈페이지 운영이 활성화된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옆 학교 홈페이지에는 관할 시도교육청이 주관하는 대회 모집 글이 수시로 올라오지만 자녀의 학교 홈페이지엔 아무 정보가 없다. 박 씨는 △A초교=과학 관련 대회 △B초교=교육청 주최 대회 △C초교=독서 관련 대회 등으로 카테고리를 정해 정보를 수집한다.

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학원가의 빠른 정보를 얻는 방법은 학원이 주최하는 설명회에 참석하는 것이다. 대형학원의 프랜차이즈 지점이나 서울 본사에서 열리는 전체설명회에 한 달에 한번씩 참석한다. 박 씨는 “학원에서 차별화된 스펙을 만들어야 경쟁력이 있다고 할 때마다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 독서, 봉사 스펙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말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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