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희귀 식물들 분화구 안에서 가을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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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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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간 식물생태계 복구한 백록담 가보니

《간간이 햇빛이 스며드는 연못 주변은 푸른빛으로 넘실댔다. 5일 한라산국립공원 백록담. 화구벽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분화구에서 먹이를 찾는 노루들이 인기척에 놀라 “컹∼ 컹∼” 소리를 지르며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며칠 동안 계속 비가 내려 분화구에 물이 가득했다. 평소 보기 힘든 진풍경이었다.》

○ 희귀, 특산식물의 향연

등산객의 발길 등으로 식생이 무너진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 분화구 일대가 복구작업 끝에 생태계를 회복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등산객의 발길 등으로 식생이 무너진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 분화구 일대가 복구작업 끝에 생태계를 회복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한라산국립공원 측의 협조를 얻어 복구 작업이 이뤄진 백록담 분화구 주변 등을 탐사했다. 남벽정상은 눈개쑥부쟁이, 구름떡쑥이 무리지어 꽃을 피웠고 투구 모양을 한 한라돌쩌귀 꽃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한라고들빼기도 바위 틈새로 얼굴을 내밀었다. 바람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암벽에는 세계에서 가장 키 작은 나무인 돌매화가 열매 맺기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 진시황 불로초(不老草) 전설이 깃든 시로미는 어느새 까만 열매를 달았다. 한발 앞서 가을맞이에 분주한 한라산은 희귀, 특산식물들이 앞다퉈 향연을 벌였다.

이들이 보금자리를 튼 바닥에는 고산초지 식물인 김의털, 검정겨이삭이 단단히 뿌리내렸다. 푹신한 풀밭을 걷는 느낌이다. 가시엉겅퀴 사이로 무당벌레가 엉금엉금 기어갔다. 연못 주변에서 북방산개구리가 풀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한눈에 보아도 식물 생태계가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등산객 발길 등으로 식물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진 곳에 복구 작업을 마무리한 지 10여 년 만에 원래 모습을 찾은 것. 서벽 방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식생 복구가 눈에 띄게 나아졌다. 한국특산종인 구상나무는 짙은 보랏빛 열매를 맺은 채 위용을 뽐냈고 산개버찌나무, 좀고채목, 털진달래, 들쭉나무의 녹색 잎이 절정에 달했다.

○ 백록담 식생 복구의 교훈

백록담 남벽과 서벽 지질은 연한 회색빛의 한라산 조면암. 동쪽 정상의 현무암에 비해 토양 응집력이 작아 조그만 힘에도 쉽게 무너진다. 여기에 등산객이 몰리면서 훼손이 빨라졌다. 정상부 훼손면적은 4만320m²(약 1만2190평)에 이르렀다. 국립공원 측은 자연휴식년제를 도입해 1994년부터 남벽정상 출입을 금지하고 2000년까지 복구 작업을 했다. 18kg짜리 흙이 담긴 녹화마대를 훼손지에 깔았다. 호우와 강풍에 씻겨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길이 30cm가량의 나무말뚝을 박았다.

등산객 몰리며 4만㎡ 훼손, 출입통제 뒤 무너진 곳 복구


문제는 식물이 뿌리내리는 것. 흙을 잡아주는 능력이 뛰어난 김의털, 검정겨이삭 등을 활용했다. 국립공원 직원들이 매년 가을 해발 1500m가 넘는 고지대에서 종자를 채집한 뒤 정성스레 말렸다가 이듬해 봄에 뿌렸다. 초지식물이 뿌리를 내리자 특산, 희귀식물 종자를 심었다.

남벽 복구공사 이후 2001∼2002년 백록담 순환로에 녹화마대 공법을 시행했다. 정상부 전체 복구공사 면적은 3만2040m²(약 9690평)로 전체 훼손면적의 79.5%에 이른다. 국립공원 측은 이후 복구공사를 중단했다. 나머지 지역은 자연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동벽에서 분화구 쪽으로 바위와 자갈 등이 흘러내린 지역은 그대로 뒀다. 인위적인 작용보다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판단했다.

제주도환경자원연구원 고정군 박사(식물학)는 “백록담뿐만 아니라 등산객 출입을 통제한 뒤 녹화마대 공법을 시행한 장구목 등산로도 토양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자생식물이 뿌리를 내렸다”며 “어렵게 복구에 성공한 만큼 앞으로 더는 훼손되지 않도록 장기 보존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지식물 먼저 뿌리내리자 특산식물도 보금자리 잡아

녹화마대 공법 이전에 쇠 그물망을 훼손지에 덮는 ‘엔카매트’ 공법 등을 도입했으나 실패로 끝나기도 했다. 녹화마대 공법을 도입하는 초기에 문제점이 생기기도 했다. 저지대의 흙을 정상으로 옮기는 바람에 흙 속에 숨어있던 씨앗이 발아하기도 했다. 대부분 고지대에 적응하지 못해 1, 2년에 사라졌지만 백록담 정상에 간혹 보이는 토끼풀은 당시 유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성보 한라산국립공원 보호관리부장은 “백록담 식생은 이제 자연에 맡기고 있지만 추가적인 훼손을 막고 한라산 자연자원이나 복구 등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연구를 위해 전문 인력 충원 등 대폭적인 조직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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