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청소년, 그들의 新생존방식]청소년상담원 ‘밀집지역 312곳’ 조사해보니

동아일보 입력 2010-09-04 03:00수정 2012-06-0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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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랭이나 팸 구합니다”… 길에서 ‘가족’을 찾는 아이들
《 거리에서 ‘팸(family·가족)’을 찾는 아이가 늘고 있다. 집에서 버림받고 돌아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팸은 가족보다 더 가족다운 사람들이다. 집을 나와 처지가 비슷한 아이들끼리 모여 집단생활을 이루는 팸은 혼자 가출해 길거리를 떠돌다 집으로 돌아가던 과거의 가출 행태와 다르다. 가정에서 버려진 거리의 아이들에게 가출은 어쩌다 한번 실수하는 ‘일탈’이 아니라 선택이 불가피한 ‘생활’로 바뀌어 가고 있다. 》

○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팸’

지난해 3월 새어머니와 다툼 끝에 집을 나온 정지훈(가명·17) 군은 돌아갈 집이 없다. 정 군이 가출한 지 얼마 안 돼 가족 모두가 캐나다로 이민을 갔기 때문이다. 이후 정 군은 함께 가출한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 팸을 이뤄 살았다. 정 군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부모님 연락처를 모른다”며 “팸과 함께 있을 때가 오히려 더 편했다”고 말했다.

집을 나온 지 4년째인 이성철(가명·18) 군은 3년째 누나 2명과 살고 있다. 성도 다르고 피도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친누나나 다름없다. ‘팸’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 1년 가까이 떠돌이생활을 하다 호스트바에 취직한 이 군은 비슷한 처지의 누나 2명을 알게 됐고 함께 살며 가족이 됐다. 하지만 현재 이 군은 아버지는 물론이고 모든 친척과도 연락을 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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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거리생활에 팸은 필수다. 예전에는 돈이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가거나 청소년쉼터를 찾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가출 청소년끼리 팸을 이뤄 생활을 한다. 적게는 3, 4명에서 많게는 10명까지 팸의 구성원은 고시원이나 모텔 등을 함께 사용하며 가족이 된다.

팸은 일종의 수습기간인 ‘이랭(일행)’이 발전된 관계다. 가출 직후 이랭으로 며칠을 함께 다니다 뜻이 맞으면 팸이 된다. 활동 중인 지역명을 따 ‘동대문팸’, ‘신촌팸’ 등으로 불린다.

인터넷의 가출 카페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팸을 구하는 글이 올라온다. 일부 카페는 가출한 시기를 구분해 팸의 기수를 나눠 소속감을 높이기도 한다. 영등포역 뒷골목의 한 PC방에서 팸을 찾고 있던 김아현(가명·17) 양은 “혼자서 PC방, 찜질방 등에서 자려면 무서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어서 빨리 팸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가출하기 전부터 팸과 이랭을 구해놓고 집을 나오는 경우도 있다. 중학교 2학년이라고 밝힌 여학생은 한 가출 카페에 ‘중2 여, 이랭이나 팸으로 끼워 주실 분 구해요’라는 글에서 “내일 모레 출가(가출)할 건데 필요한 소지품은 무엇인지 알려 달라”며 “출가를 도와줄 이랭을 구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팸을 미끼로 내건 나쁜 어른도 있다. 팸으로 받아들여주겠다며 집으로 유인해 성관계를 맺거나 성매매를 시키는 것이다. 한 가출 카페에는 19세라고 밝힌 여성이 “17∼19세의 이랭을 구한다”며 “남자 경험 있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분이면 좋겠다. 중딩도 안 어려보이면 받는다”는 글을 올려놨다. 카페 관리자는 “팸을 내세워 받아주겠다는 사람의 90%는 다른 뜻이 있는 것”이라며 “가출한 신분이다 보니 (성폭행을) 당해도 제때 신고조차 못한다”고 말했다.

○ 가출 청소년 밀집지역 전국에 312개

가출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나 잠잘 수 있는 곳이 한정돼 팸은 주로 비슷한 지역에 모여 산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의 ‘가출 청소년 밀집지역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는 총 312개의 가출 청소년 밀집지역이 있고 이곳이 팸들의 주요 생활무대가 되고 있다.

서울은 동대문과 천호 로데오거리, 노원 문화의 거리, 신림역 사거리, 영등포역 등 유흥가가 많은 곳에 가출 청소년이 밀집해 있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PC방이나 찜질방, 술집 등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동대문은 전국에서 올라온 가출 청소년의 아지트 역할을 하고 신촌의 창천어린이공원은 동성애 청소년의 정기적 모임 장소다. 노원 문화의 거리 뒷골목은 흡연하는 자퇴생이 주로 모여 ‘담배골목’이라 불린다.

부산 해운대는 여름철 전국 가출 청소년의 집결 장소다. 연산 로터리는 유흥업소 밀집지역으로 가출 청소년이 아르바이트를 많이 한다. 인천 부평역과 동인천역 부근은 원조교제 접선지역으로 이용되고 있다. 광주 구시청 인근은 쪽방촌이 많아 가출 청소년의 집단거주지다. 대전 은행동 일대 유흥가, 울산 삼산동, 안양 남부시장 주변 등 전국 312개 지역도 거리생활의 주무대다.

팸은 탈선의 길로 빠지기 쉽다. 학교 인근에서 청소년을 상대로 돈을 빼앗거나 떼를 지어 다니면서 길거리에서 금품을 뜯어내는 ‘노상까기’, 인터넷에 이랭을 구한다는 글을 올려 ‘초짜’ 가출 청소년의 ‘군자금(집 나올 때 가져 나온 돈)’을 뺏는 ‘이랭털기’, 인터넷에서 물품 판매 글을 올려놓고 돈을 받은 뒤 물건을 보내주지 않는 ‘구매사기’ 등 탈선 방식도 다양하다.

특히 여학생이 낀 팸은 성매매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청소년쉼터 관계자는 “가출 후 성매매를 경험하는 여학생이 너무 많다”며 “쉼터에 있으면서 성매매를 하기도 하고 일부는 남학생과 어울려 원조교제를 가장해 돈을 뜯어내는 ‘원조사기’도 벌인다”고 말했다.

가출 청소년끼리 직접 ‘야동’을 찍어 청소년에게 파는 경우도 있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은 ‘S급’은 5만 원, 모자이크가 처리된 ‘A급’은 3만 원에 거래된다. 한 가출 남학생은 “모자이크만 하면 언제든지 가출한 애들을 데리고 일당 30만 원에 동영상을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이 길에서 팸을 찾는 이유에 대해 신림청소년센터 박진규 실장은 “가출 청소년의 절반은 가정이 해체됐거나 방임으로 정상적인 가족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거리로 나온 아이들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끼리 이랭과 팸을 만들어 서로 의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3세 때 부모님이 이혼해 보육원에 맡겨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산 박성현(가명·17) 군은 “6개월 전 집을 나왔는데 얼마 전 아버지가 친권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전문가 진단
“가출 가장 큰 원인은 부모 불화… 집 나가는게 아니라 쫓겨나는것”

청소년 10명 중 1명은 가출을 경험하고, 4명은 가출 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출 원인의 대부분은 부모와의 불화와 연관돼 있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가출을 ‘집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6∼8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975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회 이상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11.6%였다. 가출 경험은 1회(33.6%)가 가장 많았고 2회(18%) 3회(12.6%) 순이었다. 4회 이상도 28.3%나 됐다.

가출 충동을 느끼는 청소년은 42.91%였다. 초등학생은 21.8%로 다소 적었지만 중학생(46%)과 고등학생(51.1%)은 응답자의 절반이 가출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가출 충동 이유(복수 응답)는 ‘부모가 싫다’(34%)가 가장 많았고 ‘부모의 지나친 간섭’(30.9%) ‘공부에 대한 부담’(30.1%) 등 부모와의 불화가 대부분이었다.

가출 후 돈벌이 장소(복수 응답)로는 음식점(52.6%)이 가장 많았고 PC방(36.7%) 편의점(28.6%) 등 순이었다. 특히 단란주점·룸살롱(9.6%)과 윤락가(4.9%), 티켓다방(3.4%), 안마시술소(3.1%) 등 성매매와 관련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 가족 형태는 양쪽 부모가 모두 있는 경우가 30.8%로 가장 많았고 한부모가정인 경우(24%), 조손(13.5%), 재혼(12.4%) 등 순이었다.

청소년정책연구원 백혜정 박사는 “가출 청소년의 대부분은 심각한 가정 위기를 겪고 있고 결국 이들에게 가출은 스스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쫓겨나는 것”이라며 “거리로 나온 아이들은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아이들과 어울리며 공동체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가족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들끼리 모이다 보니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탈선하는 경우가 많아 보호 대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유재중 한나라당 의원은 “가출 청소년의 대다수는 반사회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단순한 쉼터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하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청소년쉼터 지원 예산을 올해 58억 원에서 내년 55억 원으로 되레 깎아 버렸다”고 비판했다. 유 의원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처럼 치료형 쉼터를 만들어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윤석만 기자 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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