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 우리학교 공부스타/서울고 2학년 진민균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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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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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와 아프리카, 철부지 고1에게 삶의 목표 일깨워 줬어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 책상에서 멀어졌었던 서울고 2학년 진민균 군. “의학도가 되고싶다”는 비전을 갖게 된 그는 이제 
친구들과 함께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 책상에서 멀어졌었던 서울고 2학년 진민균 군. “의학도가 되고싶다”는 비전을 갖게 된 그는 이제 친구들과 함께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주중엔 매일같이 밤늦게 집에 갔어요. 방과 후 친구들하고 시내에서 돌아다니느라고요. 나쁜 짓 한 건 아니고 그냥 놀았어요. 영화 보고, 수다도 떨고….” 중학생이던 진민균 군(16·서울고등학교 2학년)은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이 좋았다. 시험도 ‘70점만 넘기자’는 생각으로 시험 직전 한 번 훑어보는 정도였다. 성적은 전교 300등 안팎의 중위권이었다. 3학년이 돼서도 학업을 멀리하자 진 군의 어머니는 그를 학원에 보냈다. 하지만 성적 향상은커녕 “민균이가 요새 학원에 빠진다”는 학원장의 전화만이 돌아왔다.
진 군이 연락도 없이 놀다가 밤 12시 넘어 들어온 날, 아들 걱정에 잠 못 이루던 어머니는 기어이 회초리를 들었다. 혼나도 그때뿐. 친구들이 놀자고 하면 거절할 수 없었던 진 군은 또 늦게 들어왔다.
진 군에게는 유도, 골프, 태권도 같은 운동을 하는 친구가 많았다. 그들도 공부라고는 관심이 없었다. 성적도 진 군이 제일 나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고등학생이니까 공부를 좀 해야겠다”고 했다. 활발하게 운영하던 미니홈피를 접는 친구도 있었다. 그들의 미니홈피 제목은 ‘공부해야 하니 잠적한다’로 바뀌었다. 진 군은 처음엔 코웃음을 쳤다.》

“폼 잡는 것 같아 보였어요. 사람이 어디 그렇게 쉽게 바뀌겠냐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 친구들,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잠깐 내비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보여주는 거예요.”

친구들의 변화를 보면서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진 군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딱히 열심히 공부해야 할 계기나 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엔 집중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시험공부를 특별히 더 하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평소 실력”만 발휘한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성적은 전교생 597명 중 198등.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과목 석차도 200등 내외에 그쳤다.

그랬던 진 군의 석차는 2학기 때 전교 107등으로 훌쩍 오른다. 어떤 변화의 계기가 있었던 걸까.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많이 혼났어요. 만날 혼나며 사는 것도 지겨워 공부 좀 해볼까 했는데, 그냥 하긴 재미가 없었어요. 승부욕을 이용했죠. 반 1등인 친구에게 다가가 ‘이번 중간고사에선 주요 과목에서 내가 널 이길 것’이라고 했죠. 그 친구와 일종의 경기를 한 거죠.”

진 군은 생전 처음 오전 1시까지 시험공부를 했다. 결과는 승. 전 과목 평균은 반 1등보다 낮았지만 국어 94점, 사회 93.6점, 수학 92점 등 주요 5개 과목의 평균은 친구보다 3점가량 더 높게 나온 것이다. 그는 “내가 그래도 머리가 나쁘진 않구나, 하면 되는구나 싶어 뿌듯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승부욕의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말고사 때는 다시 성적이 떨어졌다. 진 군이 학업을 위한 진짜 동력을 찾은 건 1학년 겨울방학 때다. 마냥 놀 것만 같던 친구들이 진지하게 인생 계획을 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고민해 봤다. 내 꿈은 무얼까.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마침 아이티 지진으로 전 세계 언론이 떠들썩한 때였다. 진 군은 연일 TV와 신문에서 건물들이 무너져내린 참혹한 아이티를 접했다. 마음이 아팠다. 이전에 굶주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TV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도 스쳐갔다.

진 군은 “우연히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죄밖에 없는 사람들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인류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면서 “인간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생명 분야의 연구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공학을 전공한 아버지처럼 생명공학 분야로 진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의과대학에 가면 인간의 몸을 좀 더 폭넓게 연구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희망 진로를 바꿨다. 의학도로서 후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연구업적을 남기고 해외 의료봉사도 가는 자신의 미래를 그렸다.

뚜렷한 목표가 생기니 학업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수학, 영어 문제를 매일 풀었다. 한번은 공부를 하다가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까지 잊었다. 원래는 수학문제를 풀다가 약속시간인 오후 5시에 맞춰 나가려고 했다. 한참 문제를 풀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시계의 짧은 바늘이 ‘6’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둘러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2학년부터는 자율고에 다니는 형의 조언에 따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오전 7시 반부터 50분 동안의 학교 자습시간에 수학공부를 했다. 쉬는 시간에도 한두 문제씩 풀었다. 문제집 한 권을 3일 만에 끝내기도 했다. 처음으로 시험 2주 전에 하루하루 무슨 공부를 할지 계획을 세웠다.

노력은 빛을 발했다. 1학기 중간고사에서 자연계 254명 중 21등을 했다. 학급 석차는 2등. 모의고사 성적도 올랐다. 3월 모의평가에서 수리영역 전교 석차가 38등이었는데 6월 모의평가에선 6등을 했다. 외국어영역은 75등에서 29등으로 뛰었다.

진 군은 “아직 목표에 다다르려면 한참 멀었다”고 했다. 놀고 싶은 욕구를 참고 공부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럴 때마다 각자의 목표를 향해 뛰어가고 있는 친구들과 주고받는 격려는 큰 힘이 된다.

특히 중학교 때 친구들은 휴대전화가 없는 진 군에게 미니홈피 방명록을 통해 격려의 말을 전해온다. ‘너도 공부 잘하고 우리 함께 힘내자’(2010년 2월 9일), ‘나 이번에 경기도 유도 대회에서 우승했다. 너도 좀 잘해봐라’(2010년 3월 13일).

“이제는 단순히 함께 노는 친구들이 아니라 인생의 동반자들 같아요. 태권도하는 친구는 벌써 도장에서 조교를 하고 있는데 최근에 이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나중에 네가 도장 차리면 내 자식들은 네가 공짜로 가르쳐주고, 내가 의사 돼서 병원 차리면 네 자식들은 내가 무료로 치료해 주겠다고.”

진 군은 “말썽쟁이가 철이 좀 들었죠”라는 말을 남기고 기말고사 공부를 하러 빈 교실로 향했다.

장재원 기자 jjw@donga.com

※‘우리학교 공부스타’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중하위권에 머물다가 자신만의 학습 노하우를 통해 상위권으로 도약한 학생들을 추천해 주십시오. 연락처 동아일보 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 02-36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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