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을 한국으로…중국 관광객 마음을 잡아라]<2> 32세 중국여성, 패키지관광 잠입동행
동아일보
입력 2010-06-17 03:002010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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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품이나 소비자의 처지에서 바라보는 것은 중요하다. 동아일보는 중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여행 상품을 보고자 했다. 베이징에서 한국여행을 떠나는 중국인 남수경(가명) 씨를 만나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자세히 기록해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그가 여행을 마치고 베이징에 돌아온 다음 날 다시 만나 메모와 사진을 보면서 한국여행의 전 과정을 재구성해봤다.》
“전골엔 콩나물만 산더미… 서울여행은 다이어트여행” 불평
여행은 먹는 게 남는건데… 밑반찬 거의 없는 불고기 식사 제주 회-불낙전골에 불만 풀려
깨끗하지만 허술한 숙소 냉장고는 ‘웅웅’ TV는 먹통 거꾸로 된 냉온수 표시에 당황
中보다 20~30%싼 명품 통 큰 중국인들 명동서 ‘펑펑’ 인삼 판매점 위안화 결제 편해
‘암행어사 하라는 소리네.’
6월의 첫날. 중국 베이징(北京) 광화루(光華路) 한국문화원 3층에 위치한 한국관광공사 베이징지사에서 평범한 중국인 관광객으로 가장해 한국 여행에서 해야 할 일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32세의 중국인으로 이름은 남수경이다. 지린(吉林) 성 출신의 조선족이어서 중국어와 한국어를 다 잘한다. 일본에 5년 동안 유학하고 현재 베이징의 일본 회사에서 일해 일본어도 잘한다. 나름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이라고 자부해 왔다.
관광공사는 매 분기 중국에서 팔리는 한국 여행상품을 몰래 모니터링해왔다고 한다. 이번 대상은 3400위안(약 61만2000원)짜리로 4박 5일 일정의 중저가 여행상품이다. 숙식, 쇼핑, 가이드 등을 점검하는 A4용지 6장 분량의 임무 목록, 즉 평가표가 꼼꼼하다. 문득 13억 중국인을 위해 한국 여행의 품질을 점검하자는 의무감이 생겼다.
○다들 여자고 아줌마네
3일 오전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 제2청사 로비에 모인 일행은 15명. 일본 여행을 마치고 오는 3명이 한국 인천공항에서 합류해 모두 18명이 됐다.
75세의 할머니가 딸 2명과 20대 손녀 1명을 데리고 온 게 눈에 띄었다. 20대 딸과 함께 온 40대 아줌마, 서로 친구라는 30대 후반의 여자 2명 등 일행 18명 중 13명이 여자다. 남자들은 일하고 여자들만 즐기는 셈이다. 허베이(河北) 성에서 온 젊은 부부는 신혼여행이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회사에서 나름 ‘노땅’에 속하는 내가 나이로는 밑에서 3번째다. 한국에는 30대 이상만 놀러가나?
사실 출발 전에는 기분이 그다지 상큼하지 않았다. 출발 직전에야 비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여행사에서 비자가 안 나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환전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출발 전날인 2일 오후 5시 넘어서 비자가 나왔다고 연락을 받았다. 신청서류를 낸 게 열흘 전인데 출발 전날 저녁에야 발급 사실을 안다는 게 좀 황당했다. 원인이 여행사인지, 영사관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 바람에 환전할 때 손해를 봤다. 공항에서는 위안당 160원에 환전해줘 시내 은행보다 5원씩 적다. 2500위안(40만 원)을 바꿨으니 1만2500원 줄어든 셈이다.
고향 옌지(延吉)에 가는 것보다 빠르게 2시간도 안 돼 도착했다. 인천공항 입국수속은 매우 빨라서 인상적이었다. 하늘은 맑았고 베이징보다 덥지 않았다. ○음식-숙박 서울은 별로, 제주는 훌륭
서울은 딱히 흠 잡을 데는 없지만 음식과 숙박이 별로였다. 첫 음식인 감자탕부터 그랬다. 맛도, 성의도 없고 기름기도 없었다. 기름을 많이 먹는 중국인들을 향한 충격요법이었을까. 신혼여행을 온 신랑은 “서울 여행은 다이어트 여행”이라고 단정했고 50대 아저씨는 “이렇게 먹으면 힘을 못 쓰지” 하고 짓궂게 말했다.
둘째 날 불고기 식사는 밑반찬이 거의 없어 상이 텅 빈 것 같았다. 셋째 날 점심식사는 비빔밥이었는데 밥에 당근 채와 무채, 계란 프라이와 콩나물을 넣은 게 전부였다. 함께 나온 신선로에 담긴 전골은 돼지고기 서너 점에 콩나물만 산더미 같았다. 일행들은 “1년 치 콩나물을 한 끼에 다 먹었다”며 불평했다.
음식 불만은 제주에서 풀렸다. 고등어구이와 불낙전골(셋째 날 저녁), 흑돼지고기 구이(넷째 날 점심), 해물전골과 회(넷째 날 저녁) 등 훌륭했다. 역시 여행은 먹는 게 남는 거다.
서울의 숙소는 깨끗했으나 허술했다. 첫날 숙소는 경기 안산에 있었다. 서울 명동에서 가느라 오후 10시 넘어 도착했다. 냉장고 전원이 켜지지 않아 사람을 불러 고쳤더니 밤새도록 ‘웅웅’ 소리가 났다. 화장실 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둘째 날 숙소인 서울 강동구 둔촌역 근처의 한 호텔은 TV가 안 켜졌다. 따뜻한 물이 안 나와 직원을 불렀더니 냉·온수 표시가 거꾸로 돼 있다. 함께 방을 쓴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에서 온 35세 언니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안 되겠군”이라고 말했다. ○중국인도 놀란 중국인의 큰 씀씀이
사실 이번 여행이 쇼핑 위주가 될 거라는 예감은 출발 때부터 들었다. 친구 사이라는 30대 후반 언니 2명은 올 초에도 한국에 와 각자 20만 위안(약 3600만 원)어치씩 샀다고 자랑했다. 한국산 제품을 샀다는 게 아니라 세계적 명품을 샀다는 소리다. 언니들은 “한국에서 명품을 사면 중국보다 20∼30%는 싸다”고 말했다.
결국 이 언니들이 바람을 잡아 첫날 동대문시장 방문이 명동으로 바뀌었다. “동대문에서는 살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쇼핑을 했지만 이 언니들은 근처 면세점에서 각각 대략 10만 위안(약 1800만 원)어치의 가방과 옷, 신발 등 명품을 샀다.
셋째 날은 종일 물건만 샀다. 아침식사 후 바로 들른 인삼 판매점에서 일행은 참 많이들 샀다. “한국 인삼은 중국 인삼보다 훨씬 효능이 좋다” “여자들의 생리불순도 치료된다” 등 판매원의 말은 귀를 솔깃하게 했고 위안화를 받는 등 지불도 편리했다. 계산하고 포장하는 데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각자 1000∼5000위안(18만∼90만 원)어치를 산 것 같다.
이어 화장품 매장도 비슷했다. 한 아저씨는 선물용이라며 혼자 6000위안(약 108만 원)어치를 샀다. 이날 오후 제주로 이동한 뒤 첫 일정도 면세점이었다. 여기서 ‘쇼핑 언니’ 2명은 다시 10만 위안어치씩을 샀다. 결국 각자 20만 위안어치를 산 것이다.
다음 날 성읍민속마을에서도 비슷했다. 판매원이 “한국 사람들은 성형을 한 뒤 피부재생에 좋은 이 크림을 바른다”고 하자 네이멍구 언니는 “어린 딸이 친구에게 꼬집혀 얼굴에 흉이 졌다”면서 개당 5만 원인 마유(馬乳) 크림을 구매했다. 한 아저씨는 “뼈엉성증(골다공증)에 특효”라는 판매원의 말에 개당 35만 원짜리 말뼈 1개를 선뜻 산다. 귀국 전 마지막 일정이 제주 이마트 방문이었으니 알 만하지 않은가.
○가격 대비 만족스럽지만 경치는 글쎄
서울의 경복궁과 민속박물관 등 한국 곳곳에서 중국 문화와 비슷한 것을 보면서 일행은 신기해했다. 청와대 부근 광장에는 멋지게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청년들이 있었는데 경찰인 줄은 나중에 알았다. 친절했고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휴전선과 제3땅굴 등도 북한의 존재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동양의 하와이’라고 잔뜩 기대했던 제주는 경치가 생각보다 못했다.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중국 구이린(桂林)이나 일본 오키나와(沖繩)가 더 나은 것 같다. 일본 여행을 하고 합류한 일행 3명도 “한국을 먼저 보고 일본을 갈 걸 잘못했다”며 “일본이 더 깨끗하고 더 아름답다”고 말했다. 단 한국 여행은 일본 여행 등 다른 해외여행과 비교해 상당히 저렴하고 안전한 편이어서 비용을 고려할 때 꽤 만족스럽다고 일행은 입을 모았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mungchii@donga.com
16일 중국 최대 여행사인 중국국제여행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한국여행상품. 주로 제주도 경치를 찍은 사진이 많다. 인터넷 화면 캡처■ 中서 팔리는 한국 여행 상품
패키지 일정 비슷비슷… 젊은층 배낭여행 늘어
1992년 중국과 수교 이후 1년 뒤인 1993년부터 한국 정부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입국을 허용했다. 다만 지정 여행사를 통하게 하는 등 절차는 까다로웠다.
부유한 중국인이 많아지고 한국의 입국 규정이 완화되면서 중국인의 한국여행은 자연스럽게 활성화됐다. 한국은 이국(異國)의 정취를 느낄 수 있지만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 비해 가깝고 여행비용이 저렴한 데다 치안도 믿을 만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에서 한국여행 상품이 무더기로 생겼다고 중국 여행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하지만 내용은 거기서 거기로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서울과 제주를 중심으로 강원과 부산을 배치하는 모양새로 일정도 대동소이하다. 최근 1, 2년 사이 광주를 가는 일정도 생겼으나 이는 관광보다는 항공편으로 경유하려는 목적이 크다고 한다.
현재 중국에서 인기 있는 한국여행 상품은 서울과 제주를 관광하는 왕복 항공편의 4박 5일 상품. 가격은 3480∼4980위안(약 62만∼89만 원) 정도다. 서울과 경기, 부산, 제주 등을 한꺼번에 도는 4박 5일 상품도 가격대는 비슷하다.
싸게는 2000위안(약 36만 원)대도 있다. 선박을 이용한 일정은 6박 7일로 더 길다. 제주가 빠지고 서울 경기 강원 등을 돈다. 오가면서 배에서 잠을 자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일정은 4박 5일이다. 이 밖에 2, 3년 전부터 중국 젊은이들의 한국 배낭여행도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중국인의 한국여행에서 제주의 위치는 특별하다. 2008년 2월 제주도에 한 해 중국 관광객 무비자 입국이 전면 확대 시행되면서 제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2008년 17만4902명에서 지난해 25만8414명(무비자 입국은 6만8737명)으로 무려 47.7%가 늘었다. 올해 들어 5월 말 현재 지난해보다 79.5% 많은 12만9438명이 찾았다. 제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1위는 지난해부터 일본인에서 중국인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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