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마스크女’ 미스터리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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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관계 동업자와 술자리후 차안서 숨진채 발견
가방안엔 직접 작성 추정 ‘동업자 살해계획서’가…

13일 오후 8시경 광주 동구 용산동 체육공원 옆 도로에 주차된 포텐샤 승용차. 전직 보험설계사 A 씨(26·여)가 조수석에서 뒤쪽 방향으로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특이하게도 A 씨는 산소마스크를 쓴 모습이었다. 마스크와 연결된 산소통(200cc)에 산소는 남아있지 않았다. 승용차 뒤편 바닥에는 빈 산소통 1개와 사용하지 않은 새 산소통 8개, 가방, 이산화탄소 소화기 등이 있었다. 이 승용차는 A 씨가 투자한 공장을 운영하는 B 씨(41) 소유 차량이었다.

경찰은 가방에서 A 씨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A4용지 12장 분량의 문서와 비닐 랩을 발견했다. 문서에는 “동업자 B 씨에게 수면제가 든 요구르트를 마시게 한 뒤 차량에 히터를 틀어놓고 드라이아이스를 놔둬 질식사시킨다. 차량 문을 열리지 않게 한다. 실패하면 비닐 랩을 씌워 숨지게 한다”는 살해 계획이 담겨 있었다. 또 “B 씨가 숨지고 나면 B 씨 명의로 든 두 개의 생명보험으로 보험금 2억5000만 원이 지급돼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있다. 질식사를 피하기 위해 산소마스크를 쓰자. 경찰 수사에 잘 대응하자”는 내용도 있었다. 컴퓨터로 작성된 문서는 군데군데 볼펜으로 수정돼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숨지기 전인 12일 오후 7시 55분경 차량이 발견된 곳에서 1km 정도 떨어진 한 식당에서 B 씨를 만나 2년 전 B 씨에게 투자한 5000만 원을 어떻게 할지 의논했다. A 씨는 술을 마시면서 요구르트 1개를 B 씨에게 권했고 자신도 3개를 마셨다는 것이다.

B 씨는 경찰조사에서 “술을 마시면서 계속 졸렸다. 한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정신을 차려보니 승용차 운전석이었다”며 “한 번 토한 뒤 운전석 문이 열리지 않아 조수석 문을 통해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목욕탕에 가 잠을 잤고, 나중에 차를 찾으러 가보니 A 씨가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A 씨 가족들은 “A 씨가 B 씨에게 받을 돈이 이자를 포함해 1억여 원”이라며 A 씨의 죽음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B 씨는 “죽을 뻔했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 씨가 문서 내용대로 일을 꾸몄다가 술에 취하는 바람에 산소통을 바꿔 끼우지 못하고 질식사했을 수도 있지만 석연찮은 점이 있어 여러 가능성을 놓고 수사하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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