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강원 평창군 선자령 정상 부근에서 훈련 중이던 제18전투비행단 소속 F-5 전투기 2대가 추락했다. 사고로 전투기에 타고 있던 오충현 중령(43·비행대대장)과 어민혁 대위(28), 최보람 중위(27) 등 세 명의 조종사가 전원 순직했다.
공군은 전투기 2대가 강릉비행장을 이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추락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추정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다만 전투기 2대가 훈련 중 공중에서 충돌했거나 기상악화, 엔진결함, 조종사의 의식상실, 기체결함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공군은 정밀조사를 위해 현장 눈 속에 남아있는 잔해를 모두 수거할 방침이다. 또 F-5 기종에 설치된 음성기록 장치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공군은 특히 조종사들이 비상탈출을 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조종사들 왜 탈출 못하나?
이런 가운데 추락사고가 발생한 날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전직 공군장교가 본 전투기 추락’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관심을 끌었다. 이 글은 조종사가 전투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공군장교로 군 생활을 했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이 네티즌은 군 복무기간 전투기 여러 대가 추락했지만 추락 사고를 대하는 공군의 태도에 문제가 많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공군은) 기체 결함으로 항공기가 논두렁에 추락했다면 기체 결함 이야기는 접어두고 ‘민가를 피해 조종간을 끝까지 놓지 않은 군인정신’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본질적인 문제는 덮어둔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정훈장교들이 이를 두고 ‘물타기’라고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또 “물론 민가를 피해 조종간을 끝까지 놓지 않은 군인정신은 훌륭한 군인상의 표현”이라면서도 “하지만 훌륭한 군인을 전시가 아닌 평시에 헛되이 죽게 한 이유에 대해서는 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나”라고 분개했다.
그는 “공군은 비행사고로 조종사가 순직하면 ‘비상탈출의 기회는 있었지만 기체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는 발표를 빼놓지 않는다”며 “그 말 속에는 인명보다 기체를 더 중요시 여기는 공군의 ‘인명경시 사상’이 녹아 있지 않는지 반문하고 싶다”며 강조했다.
이어 조종사들이 이상을 감지하고도 기체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비상탈출이 평생 ‘오점’으로 남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 지인을 예로 들며 “기체를 포기하고 비상 탈출한 전력 때문에 진급이 누락됐다”고 했다. 그는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이젝션(ejection·비상탈출)’을 하면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온갖 고초는 다 겪는다. 기체와 함께 죽으면 가족들은 연금이라도 받지만 기체를 포기하고 살아남으면 진급누락은 물론이고 군 생활 내내 결정적인 순간에 불이익을 받는다. 그 선배도 비행기 한 대 말아먹고 꼬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군 “불이익? 근거 없는 주장이다”
이 글이 파문을 일으키자 국방부는 3일 “비행사고가 인적 과실일 경우 일시적 진급 문제 등 일정 불이익이 있을 수 있으나 무조건 비상 탈출을 했다고 해서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내용의 공식입장을 밝혔다.
공군도 지난해 최고의 조종사인 ‘탑건’에 선정된 이진욱 중령을 예로 들며 네티즌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 중령은 2001년 6월 경북 안동 상공에서 F-16 전투기를 타고 야간 비행훈련을 하던 중 전투기 엔진이 갑자기 꺼지면서 불이 붙었다. 이에 이 중령은 “민가를 피해 탈출하겠다”는 교신을 남긴 뒤 안동 하회마을로 추락하던 전투기 기수를 가까스로 인근 야산으로 돌려놓고 추락 직전 비상 탈출한 바 있다.
현재 공군은 중단했던 비행훈련을 순차적으로 재개했지만 F-5 기종은 사고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비행을 중단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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