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헛간처럼 방치된 아버님 생가 안타까워”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3월 4일 03시 00분


송암 문화사업 기금 조성을 위한 전시회에 출품될 송암 박두성 선생의 딸 박정희 씨 작품 ‘찬양’(왼쪽)과 손녀 유명애 씨의 작품 ‘가을’. 전시회에는 이들 모녀 작품 90점가량이 출품되며 수익금은 문화사업 기금으로 활용된다. 사진 제공 ‘송암 박두성 선생 문화사업선양회’
송암 문화사업 기금 조성을 위한 전시회에 출품될 송암 박두성 선생의 딸 박정희 씨 작품 ‘찬양’(왼쪽)과 손녀 유명애 씨의 작품 ‘가을’. 전시회에는 이들 모녀 작품 90점가량이 출품되며 수익금은 문화사업 기금으로 활용된다. 사진 제공 ‘송암 박두성 선생 문화사업선양회’

화가 박정희씨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
송암 박두성 선생 문화사업 기금조성 전시회
5∼11일 인천종합문예회관 딸 유명애씨와 작품 90점 전시


“아버님은 평생 앞 못 보는 사람들을 잘살게 해보려고 애쓰신 분이셨다오. 내 작품이 돈으로 변해서 아버님 생가 복원에 도움이 되면 얼마나 좋겠나.”

한글 점자를 창안해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일컬어지는 송암 박두성 선생(1888∼1963·사진)의 둘째 딸인 화가 박정희 씨(87)는 3일 화실 겸 살림집인 인천 동구 화평동 ‘평안 수채화의 집’에서 꽃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몸이 불편해 청소, 빨래, 부엌일 등의 허드렛일을 전혀 못하지만, 화폭에서 좀처럼 손을 떼지 않고 있다.

그는 6회의 개인전과 여러 차례의 자선전을 열어 수익금을 ‘점자도서관 건립기금’이나 ‘중도 실명자 장학기금’으로 내놓은 바 있다. 5∼11일 인천종합문예회관 중앙전시실에서는 아버지를 위한 전시회를 연다. 딸인 유명애 씨(65)와 함께 ‘송암 박두성 선생 문화사업 기금 조성’을 위한 모녀전을 마련하는 것이다. 서양화가인 유 씨는 ‘진흥아트홀’ 관장을 지내다 강원 춘천시에서 복지시설인 ‘예예동산’을 운영하고 있다.

이 모녀전은 송암 선생이 태어난 교동도(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생가 복원과 묘역 이전 사업에 시동을 거는 의미를 띤다. 박 씨의 작품 중 70점과 중견 서양화가인 유 씨의 작품 20점을 전시한다.

박 씨는 “기력은 없지만 조물주의 솜씨가 너무 기가 막혀 박수를 치면서 나무, 꽃 등 자연을 주로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위대한 일을 하신 아버님의 생가는 헛간처럼 변했고, 묻히신 묘는 길이 막혔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송암 선생의 묘지는 인천 남동구 수산동 야산에 있다. 도로에서 이어지는 입구가 막혀 먼 길로 돌아가야 하고, 주변이 무연고 묘와 전신줄로 둘러싸여 있다. 그가 태어난 3월 16일(음력)이면 수많은 시각장애인이 묘지 참배에 나서지만 접근이 어려워 불편을 겪고 있다. 유가족들은 국립묘지로의 이장을 정부에 두 차례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교동도의 송암 선생 생가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다른 개인 소유로 아무런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송암 박두성 선생 문화사업선양회’는 생가 터 일대 700m²를 사들인 뒤 묘를 이장해올 예정이다. 또 생가를 복원하고, 묘역 주변을 공원으로 꾸밀 계획이다.

이어 올해 말경 송암 선생의 일대기를 만화책으로 펴낸 뒤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독후감 공모전도 실시한다. 올해 발간된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지학사)에는 송암 선생의 전기가 실렸다. 인천시의회가 지난해 말 송암 선생 문화사업 추진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강화군은 생가복원 용역 사업 등을 위해 2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놓았다.

송암 선생은 1912년 설립된 제생원(장애인특수교육기관) 교사, 인천 영화학교 교장(1936년)을 지낸 한국 시각장애인 교육의 선구자다. 시각장애인이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6점자 한글인 ‘훈맹정음’을 1926년에 만들었고 성경, 명심보강, 의학서적 등 76종을 점자로 보급했다. 인천시 시각장애인복지관 1층에는 송암 선생이 사용하던 점역판, 점자 제판기 등 200여 점의 자료와 사진을 전시한 기념관이 있다. 송암 박두성 선생 문화사업선양회 032-932-0011.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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