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내 등이 따뜻해 좋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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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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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 아내 7년간 오토바이 태우고 병원 다니다 사고… 아내 숨져
시력잃은 아내 멀미 안나게 천천히 몰아 병원까지 3시간
일도 접고 병수발 했지만…“여보 미안허요, 미안허요”

24일 오전 전남 보성군 벌교읍 S병원 영안실. 환자복을 입은 김모 씨(59)는 아내 문모 씨(53)가 흰 천에 덮여 운구되는 것을 보고 소리 없이 흐느꼈다. “평생 잘해 주지 못했는데…. 여보 미안허요.” 교통사고로 몸이 성치 않은 김 씨는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운구행렬을 따랐다. 그러면서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었다.

전남 고흥군 대서면에서 농사를 짓는 김 씨는 이틀 전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사고 지점은 집에서 70여 km 떨어진 광주였다. 김 씨는 당뇨병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아내를 태우고 병원이 있는 광주까지 찬바람을 맞으며 달렸다. 문 씨는 10년 전 당뇨병에 걸려 병원 치료를 받던 중 3년 전부터 합병증 때문에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 1급이다.

어둠이 깔릴 무렵 김 씨가 모는 오토바이는 광주 동구 소태동 왕복 6차로에 접어들었다. 공원 앞을 지나던 오토바이는 좌회전하던 승용차와 부딪쳤다. 두 사람은 헬멧을 쓰고 있었지만 뒤에 타고 있던 문 씨는 충격으로 몸이 튕겨 나갔다. 머리를 크게 다친 문 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5시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김 씨는 7년 전부터 매달 한 차례 아내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광주 조선대병원을 찾았다. 한 달 치 약을 타고 골다공증 치료 주사를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은 25일 오전에 진료가 예약돼 하루 일찍 올라와 여관에서 묵을 참이었다.

아내는 차멀미가 심해 버스나 승용차를 타지 못했다. 차를 타면 2, 3일간 드러누워야 할 정도로 후유증이 컸다. 그래서 김 씨는 10년 전 125cc 오토바이를 구입했다. 고흥에서 광주까지 가려면 보성군, 화순군 등 2개 군을 거쳐야 했다. 도로 사정도 그리 좋지 않다. 꾸불꾸불한 2차로 지방도 구간이 많고 경사가 심한 곳도 있다. 승용차로는 1시간 반 거리지만 아내가 멀미하지 않도록 오토바이를 천천히 몰아 집에서 광주까지는 3시간 넘게 걸렸다.

김 씨 부부는 동네에서 저렇게 애틋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금실이 좋았다. 김 씨는 시장에 갈 때 꼭 아내를 태우고 다녔다. 곗날이나 마을 행사 때도 손을 잡고 다녔다. 아내가 아픈 뒤로는 한시도 떨어져 지낼 수 없어 바다 일도 그만뒀다.

“앞이 안 보이는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손을 더듬거리면서 밥상을 차렸어요. 아버지는 자식들이 그렇게 말렸는데도 어머니를 태우고 그 먼 길을 달리시더니….” 김 씨의 큰아들(32)은 “어머니가 오토바이를 타면 아버지의 등이 그렇게 따뜻할 수 없다고 좋아하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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