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보내는 희망편지] ‘力士’ 꿈꾸는 中1 최민기군과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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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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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보다 장미란 누나가 ‘우상’… 누나처럼 될 수 있을까요”

저는 강원 철원군 갈말읍에 사는 신철원중학교 1학년 최민기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동생 민혁이와 함께 역도를 하고 있어요. 이젠 1년 정도 됐는데 때로는 동생이 저보다 운동을 더 잘하는 것 같아요.

얼른 저도 운동을 잘해 동생에게 멋있는 형이 되고 싶고 아픈 아빠에게도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솔직히 공부보다 운동이 훨씬 좋아요. 훈련을 하다 보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거든요. 밤늦게까지 운동을 하고 집에 들어올 때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물론 지금 저희에게 공부가 중요한 때라는 건 알고 있지만요.

장미란 누나는 제 우상이에요. 세계신기록을 연달아 경신하는 장미란 누나를 보면서 누나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제 동생은 저보다 누나를 더 좋아합니다. ‘소녀시대’보다도 장미란 누나가 더 좋다고 합니다. 저도 제가 하고 있는 역도가 인기 종목이 된 걸 보면서 누나가 더 존경스러워졌어요. 한 사람이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누나를 만날 수 있다면 운동하는 곳에도 가고 싶고 운동하는 모습도 보고 싶습니다. 누나는 어떻게 운동을 했을까. 어떻게 하면 누나처럼 될 수 있을까. 긴장되고 설레지만 누나를 만나면 왜 운동을 하는지, 운동을 하면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열심히 어려움을 견뎌내면 아픈 아빠에게 기쁨을 주는, 이름을 빛내는 그런 선수가 될 수 있겠죠? 동생과 저는 같은 꿈을 향해 열심히 할 것입니다. 응원해주세요, 누나!
“인내하며 세상을 번쩍 들어!”

“더 훈련하면 더 좋은 기록… 운동 즐기면 결과도 더 좋아”

역도선수를 꿈꾸는 최민기(오른쪽), 민혁(왼쪽) 형제가 장미란 선수를 만났다. 태릉선수촌 역도훈련장 입구에 있는 장미란 선수
사진 앞에서 장 선수와 함께한 이들 형제는 “꼭 국가대표 선수가 돼 다시 태릉선수촌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박영대 기자
역도선수를 꿈꾸는 최민기(오른쪽), 민혁(왼쪽) 형제가 장미란 선수를 만났다. 태릉선수촌 역도훈련장 입구에 있는 장미란 선수 사진 앞에서 장 선수와 함께한 이들 형제는 “꼭 국가대표 선수가 돼 다시 태릉선수촌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박영대 기자
꿈 많은 역사(力士) 형제의 궁금증은 끝이 없었다. 하긴 그들의 눈앞에 서 있는 건 매일 훈련장에서 바벨을 들어올리며 바라보던 포스터 속 ‘장미란 선수’. 망설임도 없이 ‘소녀시대보다 장미란 누나가 더 예쁘다’고 외치던 최민기(13), 민혁(11) 형제가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장미란 선수(26)를 만났다. 이들의 만남은 흡사 팬 미팅을 방불케 할 만큼 뜨거웠다.

“누나는 고교에 들어가서 역도를 시작했는데 너흰 벌써 시작하다니 빠르다. 네 최고기록은 얼마야?” “전 인상 60kg에 용상 70kg이고 민혁이는 25kg, 32kg요.” “와, 민혁이 기록이 내가 첫 대회에서 세운 용상기록(30kg)보다 좋은데?” 장 선수와 이들 형제의 만남은 자연스레 역도 이야기로 시작됐다. “누나는 역도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난 역도가 좋아서 시작했던 건 아니야.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재미를 느껴 계속하게 됐지. 내가 잘할 수 있고 또 사람들도 응원해주니까. 너흰 어떠니?” “역도가 좋아요. 공부는 잘 못하지만 역도만은 1등이죠.” 민혁 군의 자신 있는 목소리에 장 선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챔피언인 장 선수는 지난달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2009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도 정상에 올라 4연속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큰 경기를 치르고 나서인지 피곤함도 엿보였지만 천진난만한 형제 역사와의 이야기 도중엔 몇 번이나 큰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이들 유쾌한 형제 역사에게도 고민이 있다. 역도를 시작한 지 이제 1년, 잘하고 싶은 욕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기 때문. “전 교육감기대회에서도 떨렸는데 누나는 세계선수권 때 기분이 어땠어요?”(민혁 군) “오히려 큰 경기일수록 마음을 최대한 가볍게 먹으려고 노력해. 그냥 바벨에만 집중하지.” 이들은 경기 전 마인드컨트롤 요령과 훈련법 등을 꼼꼼히 물었다. “기록이 잘 안 늘 땐 어떡하죠?” “더 노력해야 기록이 늘어날 거라고 되뇌고 인내하며 훈련하지. 너희는 하고 싶어서 시작한 역도니까 나보다 더 잘할 거야.”

“누나랑 저랑 발사이즈가 265mm로 같아요. 우리도 형제가 같이 운동하고.”(민기 군) 장 선수의 응원에 기분이 좋아진 형제 역사는 공통점을 찾아내며 장난을 걸었다. “응, 나도 동생하고 같이 운동을 하지. 나의 고충을 먼저 눈치채고 챙겨줘서 힘이 많이 돼. 너희도 형제니까 서로 위해주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는 거다.” 토닥거리던 두 형제는 장 선수의 한마디에 그 자리에서 서로 싸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모습을 기특한 듯 바라보던 장 선수는 형제의 손을 여기저기 살피며 굳은살 제거하는 법까지 꼼꼼하게 일러줬다. “물집은 잘 소독한 면도기 같은 걸로 제거하면 좋아. 민혁이처럼 손톱으로 뜯거나 하면 나중에 덧나.”

아쉬운 만남의 시간이 끝나고 장 선수는 잠시 옷을 갈아입는다며 사라졌다. 15분여가 흘렀을까. 돌아온 장 선수의 두 손에는 역도화 박스와 잠바, 그리고 귀마개가 들려있었다. “내가 신으려고 사놓은 역도화인데 새거야. 잠바는 몇 번 입었는데 미안하다.” “아니에요. 누나가 입었던 잠바라 더 좋아요.” 약간 큰 잠바와 귀마개였지만 형제는 곧바로 하나씩 착용했다. 한겨울 매서운 날씨였지만 그들의 뒷모습에선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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