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째 간암 투병, "그래도 나는야 행복한 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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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5일 21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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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기자
김재명 기자
"꿈과 희망을 배달하는 산타가 되겠습니다."

15일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강당에서 만난 류중금 씨(70·사진)는 빨간 모자와 장갑에 새하얀 수염까지 영락없는 산타할아버지의 모습으로 80여 명에 달하는 '동기' 산타 할아버지·할머니와 '산타의 다짐'을 선서했다.

간암 판정을 받고 3년 째 투병중인 류 씨는 이날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가 공동으로 진행한 산타학교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한 것을 기념하는 졸업식에 참석했다.

"따뜻한 마음과 아름다운 미소로 봉사하겠습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겠습니다." 16일부터 시작되는 현장 봉사에 앞서 산타로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선서문을 읽어 내려가는 류 씨의 목소리는 불과 하루 전까지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다가 퇴원한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활력이 넘쳤다.

류 씨가 산타 복장으로 독거노인 수용시설, 조손가정, 어린이집 등 서울 곳곳을 누비며 연말마다 봉사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노인복지관에서 우연히 산타학교 학생 모집공고를 접한 뒤 류 씨의 인생은 달라졌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산타학교에 입학한 3일부터 '산타처럼 웃는 방법' '실감나게 동화 구연을 하는 방법' '산타는 없다고 우기는 조숙한 아이에게 대처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산타로 활동하기 위한 기술을 배웠다.

"지난해에도 산타학교를 들었는데 올해는 마술을 3개나 새로 배웠어요. 가위로 자른 줄이 눈 깜짝할 새 멀쩡한 모습으로 바뀌는 마술이에요. 나중에 아이들에게 보여줄 마술인데 요즘 아이들은 워낙 눈치가 빨라서 비법을 안 들키고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오랜 투병으로 쇠약해진 자기 몸보다 아이들에게 보여줄 마술이 미숙한 것이 더 마음이 쓰인다는 류 씨. 그가 간암 판정을 받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었다.

10년 전부터 앓았던 간경화가 악화됐다. 병원에 입원해서 받은 항암치료만 벌써 13차례. 지난해부터는 두 달에 한번 꼴로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건강상태는 좋지 않은 편이다. 항암제의 부작용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넘길 수 없어서 한 번 입원에 몸무게가 4, 5㎏씩 빠지는 것이 예삿일이다. 하지만 그는 나누는 삶 속에서 병마와 싸울 힘을 얻고 있다.

"행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했던가요? 산타로 분장한 제 모습에 즐거워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사실 제가 더 즐겁습니다. 아직까지 암 조직이 다른 장기에 전이되지 않은 것도 아이들에게서 좋은 기운을 받아서 그런가 봅니다."

류 씨의 자녀들은 매서운 겨울 날씨에 나가는 봉사활동이 아버지의 건강을 해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지만 류 씨는 "아무 문제없다"는 반응이다. "그저 연말에 며칠 동안 외로운 이웃들과 함께 노는 일인데 함들게 뭐가 있습니까. 오히려 노인이라고, 또 병자라고 외면 받고 소외받지 않고 세상을 향해 할 일이 있으니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지요. 제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여태껏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들을 되돌려주는데 쓰려고 합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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