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드라마 뺨친 ‘로비특명’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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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신도시 입찰’ 4명 구속
입찰평가위원 후보명단 입수
추첨때 전화… 확정여부 확인
집앞 대기팀에 연락… 돈건네

7월 17일 오전 3시 50분경. 경기 파주시 출판단지 내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대회의실에 양복 차림의 남자 7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이 중 4명은 파주시청 공무원, 나머지 3명은 국내 유명 건설업체 세 곳에서 온 관계자들이었다. 이들은 590억 원 규모의 파주시 교하신도시 복합커뮤니티센터 공사업체를 결정할 평가위원 10명을 뽑기 위해 이른 새벽 한자리에 모였다.

참석자들은 모두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상의까지 벗었다. 혹시 누군가가 몰래 명단을 유출할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건설업체 관계자들이 돌아가며 추첨으로 명단을 뽑았다. 모든 일이 투명하고 탈없이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007 영화를 방불케 하는 최첨단 ‘로비작전’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오전 4시 40분경 파주시청 담당 공무원 김모 씨가 평가위원에게 연락을 시작했다. 그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한 명씩 통화를 했다. 김 씨가 전화를 걸 때마다 앞에 있던 노트북 컴퓨터에 전화번호가 그대로 저장됐다. 무선인터넷 접속시스템을 통해 스마트폰과 노트북 컴퓨터를 연결했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 이곳에서 차량으로 약 15분 떨어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모 PC방에는 금호건설 김모 과장이 컴퓨터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추첨 현장에 있는 노트북에 원격 접속해 실시간으로 전화번호를 확보했다. 전화번호 주인의 신원은 사전에 입수한 평가위원 후보자 명단을 대조해 금방 확인됐다.

금호건설 본사에 있던 김모 상무 등은 평가위원 집 앞에 대기하던 로비담당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담당자들은 평가위원에 선정된 환경관리공단 김모 팀장에게 이날 오전 4만 달러(약 5000만 원)를 건넸다. 첩보영화 뺨치는 새벽 로비작전에 힘입어 금호건설은 이날 오후 현대건설과 동부건설을 제치고 최종 적격업체로 선정됐다.

이날 로비작전에 앞서 이뤄진 사전 준비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했다. 조달청 공사계약 입찰공고가 난 것은 4월 28일. 그러나 사업계획이 업계에 알려지면서 이미 4월 초부터 업체들의 로비전이 시작됐다. 금호건설은 4월 초부터 한국토지주택공사(LH·당시 대한주택공사) 박모 팀장, 신모 단장 등에게 향응을 제공하며 평가위원 등록을 권유했다.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은 금호건설 관계자 등 4명을 뇌물공여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다른 28명은 불구속 입건했다고 7일 밝혔다.

의정부=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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