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서 알면 부모님 다쳐요”… 졸업-취업 기쁨은 가슴속에

  • 입력 2009년 7월 25일 02시 57분


서울대 첫 탈북자 출신 졸업생 나온다

2003년 동생과 함께 탈북
“운이 좋았을뿐” 인터뷰 사절

“생각하시는 것처럼 제가 그렇게 뛰어난 게 아니라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채모 씨(29)는 완고했다. 그는 24일 동아일보와 어렵게 통화가 이뤄졌지만 “죄송하다”는 말만 수차례 반복하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앞서 서울대와 회사를 통해 연락처를 문의했지만 그는 “절대 연락처를 알려주지 말라”며 인터뷰 거절 의사를 밝혔다. 북한에 계신 부모님의 안전 문제 때문에, 그리고 이제 막 취업한 회사에 적응하고 있는데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채 씨는 곧 탈북자 출신 ‘서울대 졸업생 1호’가 된다. 그는 2005년 3월 서울대 공대에 입학해 화학생물공학부를 다녔다. 서울대는 2005학년도 신입생부터 정원 외로 수시모집 북한이탈주민 특별전형을 통해 탈북자 출신 학생들을 선발해 왔다. 당시 탈북자 출신 수험생 19명이 지원했지만 채 씨를 제외한 18명은 1단계 수학·논술전형에서 탈락했다. 이 전형에는 2005∼2009학년도 입시까지 76명이 지원했지만 9명만 합격했다.

탈북 청소년들이 한국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탈북자 출신 첫 서울대 졸업생이 나온 것은 의미가 있다. 탈북 청소년들에게 성공적인 롤 모델이자 ‘희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4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한 학생들의 평균 고교 취학률은 98%를 넘었지만, 탈북 청소년의 고교 취학률은 29.9%에 불과했다.

채 씨는 북한 함흥공대를 다니다가 2003년 동생과 함께 탈북했고, 현재 서울 양천구에서 살고 있다. 다섯 살 어린 남동생도 서강대에 다니는 등 형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관계자는 “채 씨가 성적도 우수하고 장학금을 받는 등 학교생활을 성실히 해왔다”고 말했다.

채 씨는 9학기 만에 8월 27일 서울대를 졸업한다. 그토록 ‘어렵다’는 취업이지만 그는 한 국내 유명 조선업체의 신입사원 채용시험에 합격해 현재 직무연수를 받고 있다. 그는 앞으로 선박의 도장(塗裝), 설계 분야에서 일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탈북 이후 남한 정착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서울대까지 졸업한 채 씨의 노력과 품성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여러 경로를 통해 채 씨를 직접 만나려고 했지만 그는 언론에 알려지는 것을 꺼렸다. 가까스로 나눈 통화에서 그는 “내가 탈북자 서울대생 첫 사례로 언론에 보도되면 북한의 부모님에게 혹시 어떤 압박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부모님께 죄송한 게 많아서 더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운이 좋아서 입학, 졸업, 취업까지 한 것뿐”이라며 “서울대는 내가 첫 탈북자 졸업생이지만 다른 명문 대학을 졸업해서 더 좋은 회사에 다니는 탈북자도 있다. 내가 롤모델이 된다는 것도 부담스럽고 창피하다”고 덧붙였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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