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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6월 2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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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민족사관고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하버드대,프린스턴대 스탠퍼드대 등 미국의 10개 명문대에 동시 합격해 화제를 모았던 박원희 씨(22·여). 합격 통보를 받은 대학 중 하버드대에 입학한 박 씨는 지난해 성적이 우수한 미국 대학생·졸업생 모임인 ‘파이 베타카파(Phi Beta Kappa) 클럽’의 멤버로 선정된 데 이어, 이달 초 대학 졸업식 땐 성적 우수자에게 주어지는 ‘매그나 쿰 라우데(Magna Cum Laude)’ 상을 수상했다. 해외 체류 경험이 없는 ‘토종파 학생’으로 하버드대에 입학해 5년 만에 학사(경제학), 석사(통계학) 학위를 모두 취득한 박 씨.그는 이 모든 일을 어떻게 이뤄낼 수 있었던 걸까? 박 씨가 일궈낸 성과는 엄마 이가희 씨(46·사진·대전 유성구)의 특별한 교육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재밌게 즐겁게! 어릴 때부터 ‘5감학습’
공부습관은 초등생 때 확실히 잡고
적성 제대로 파악-진로 로드맵 가이드
○ 초등학교 입학 전: 형식을 파괴하라! 재미를 찾아라!
“원희와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었어요. 딸아이는 ‘백설공주’ 역을, 전 백설공주에게 독사과를 건네는 ‘나쁜 왕비’ 역할을 맡아 연극을 하듯 책을 읽었죠. 한번 독서에 재미를 붙이고 나니 혼자서도 매일 수십 권의 책을 읽고 또 읽더군요.”
이 씨는 “공부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것을 배우든 일단 그 속에서 재미를 발견하고 나면, 자녀는 부모가 시키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무조건 “공부해라” “책을 읽어라”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자녀가 스스로 책을 펼쳐 들도록 공부를 놀이로 바꾸고, 배움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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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자녀에게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오감으로 즐기는 독서법’을 개발했다. △직접 만든 왕관과 칼, 옷 같은 소품을 이용해 책 내용을 온몸으로 표현하기 △책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보기 △등장인물별로 목소리의 톤이나 억양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책 읽기 등의 방법을 활용한 것.
영어학습도 놀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 씨는 소수 그룹으로 진행되는 공부방에 박 씨를 보내 요리를 하고 춤을 추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우도록 했다. 영어단어도 직접 단어카드를 만들어 게임을 하면서 익히게 했다.
일기쓰기 지도에서도 이 씨에겐 ‘어떻게 글쓰기를 즐기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이 씨는 그날 TV 뉴스에서 본 ‘에티오피아 난민’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일기장에 쓰게 하거나, 시 또는 편지 형식으로 다채롭게 일기를 쓰게 했다. 하루 일과를 죽 나열하는 식이 아닌 자기의 생각과 느낌이 중심이 되는 일기를 쓰도록 형식에 변화를 주고, 주제를 ‘콕’ 짚어 던졌다.
이 씨는 “독서와 일기쓰기는 학습능력 향상에 핵심이 되는 어휘력과 이해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데도 효과적”이라며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읽고 쓰는 훈련을 하면 논술과 영어 에세이 실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 초등학교 입학 후: 대학을 결정짓는 공부습관, 초등학교 때 잡아라!
“공부습관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잡아야 해요. 학습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안목과 시간 관리를 하는 능력, 학습 계획을 세우는 법을 가르쳐 주고 반드시 실천하도록 지도하면 초등학교 고학년 땐 엄마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학습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능동적인 아이가 돼요.”
이 씨는 박 씨가 7세 때부터 올바른 공부습관을 갖도록 지도했다. 공부가 가장 잘되는 시간, 학습 능률이 오르는 장소, 공부한 내용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암기법 등 박 씨가 자기에게 딱 맞는 공부방법을 찾고 체화시키도록 이 씨는 곁에서 ‘학습 도우미’ 역할을 했다.
박 씨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엔 학습계획을 더욱 철저히 따르도록 했다. 이 씨는 매일 같은 시간 공부방으로 박 씨를 불러 그날 학교와 학원에서 공부한 내용을 복습하도록 했다. 복습이 끝나면 일기쓰기와 책 읽기, 영어단어 20개와 고사성어 10개 암기를 순서대로 끝내도록 지도했다.
수학과 영어엔 매일 두 시간 이상을 투자하도록 했다. 수학은 응용력과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경시대회 문제 위주로 풀게 했다. 어려운 문제가 나와도 해답지를 보여주지 않고 혼자 힘으로 푸는 습관을 들이도록 충분히 시간을 줬다.
영어는 전문학원에 다니며 체계적으로 실력을 쌓도록 했다. 국내파 학생들이 모인 월·수·금요일 반과 해외파 학생들로 구성된 화·목·토요일반 수업을 모두 듣게 하고 귀가한 뒤엔 매일 20분씩 CNN(또는 AFN) 뉴스를 듣게 했다. 영어책을 읽을 땐 에세이에 활용할 수 있는 표현이나 문장을 발췌해 별도의 노트에 기록하도록 지도했다.
“수학은 학교 내신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꼭 잘할 필요가 있는 과목이에요. 영어는 아이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요소고요. 초등학교 때 수학, 영어의 기초를 잡아놓으면 중·고교생이 됐을 때 남보다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어요. 학습에 대한 자신감도 더 커지고요.”
○ 중학교 3학년: 인생의 로드맵을 제시하라!
“세계를 무대로 뛰는 인재(人材)가 되기 위해선 미국 유학이 필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원희가 중학교 3학년 때 민사고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죠.”
이 씨는 학업뿐 아니라 다양한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경험을 쌓고, 체계적으로 유학 준비를 할 수 있는 민사고의 커리큘럼이 박 씨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박 씨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재들과 경쟁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 씨는 딸이 무조건 부모의 생각을 따르도록 밀어붙이지 않았다. 대회에 나가 대상을 수상하지 못하면 이듬해 같은 대회에 또 출전해 기어코 1등을 따내는 승부욕과 성실함을 근거로 들며 딸을 설득했다. “너라면 꼭 해낼 수 있다”는 말로 용기를 북돋아 줬다.
이 씨는 박 씨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격려와 응원을 잊지 않았다. 이 씨가 그린 딸의 인생 로드맵은 2004년 그대로 현실이 됐다.
이 씨는 “자녀의 적성과 가능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엄마”라면서 “자녀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가장 이상적인 방향을 제안하는 역할 역시 엄마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 이가희 씨는 7월 18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리는 강연 ‘글로벌리그로 가는 길, 아이비리그로 가는 길’의 강연자로 나서 자녀의 영어 지도법, 학습관리법 등 노하우를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