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예가 되겠습니다’

  • 입력 2009년 6월 27일 03시 00분


기획사대표, 전속계약 女가수에게 받아낸 각서 제목은…
소속 연예인 이적 막으려 감금-폭행-동영상 촬영…
방송출연 미끼 금품 갈취도

2007년 8월, 스무 살의 가수 지망생 A 씨는 희망에 부풀었다. 가수가 되려던 꿈을 이룰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모 연예기획사 대표 김모 씨(47)는 A 씨를 오디션한 뒤 “노래에 재능이 있으니 스타로 만들어 주겠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A 씨의 꿈은 한 달 만에 무참하게 부서져 버렸다. 같은 해 9월 A 씨는 같은 소속사 다른 가수의 지방 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가던 중 갑자기 돌변한 김 씨를 대해야 했다. 김 씨가 A 씨를 협박한 뒤 호텔로 데려가 성폭행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올 1월에는 노래 연습을 하고 있던 A 씨를 사장실로 불러 “다른 회사에 가려고 하느냐”며 으름장을 놓고 감금하기도 했다. 김 씨는 자신의 소유인 서울 강남의 한 술집에 A 씨를 데려가 방송국 관계자 등에게 술 접대를 하도록 강요했다. 이 같은 협박과 폭력은 올 4월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계속됐다.

술 접대 등을 비관해 3월 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탤런트 고(故) 장자연 씨의 상황과 유사한 연예계의 뿌리 깊은 병폐가 또다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소속사 연예인을 성폭행한 혐의(강간치상)로 김 씨를 구속했다고 2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소속사 연예인이 계약을 파기하거나 다른 기획사로 옮길 것에 대비해 수치스러운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놓았다. 또한 각종 공연과 방송 출연 등을 대가로 성 상납을 강요하고 이를 거절하면 전속 계약서를 내세워 당사자와 가족을 협박했다.

A 씨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른바 ‘노예 계약’ 때문이었다. A 씨는 김 씨의 연예기획사와 2007년 8월 계약금 100만 원에 전속기간 7년을 조건으로 한 연예인 전속 계약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A 씨는 전속 계약 조건으로 △계약기간 중 3장의 앨범을 발표하지 못하면 계약기간을 무기한 연장하고 △지정해 주는 숙소에서 혼자 생활해야 한다 등 일방적인 계약을 체결했다. 김 씨는 A 씨에게서 ‘나는 김 씨의 노예가 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노예각서’까지 받아내는 등 2007년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25차례에 걸쳐 A 씨를 협박했다.

김 씨는 지상파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출연시켜 주겠다고 속여 또 다른 여가수 B 씨(49)로부터 5000만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은 A, B 씨 외에 김 씨에게서 피해를 본 연예인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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