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총장“상상못한 변고로 국민슬프게 해…수사는 정당했다”

  • 입력 2009년 6월 4일 02시 59분


盧 전대통령 서거 충격 이어 千회장 영장기각 결정타

사표내자마자 검찰청사 떠나

당분간 차장 대행 체제로

임채진 검찰총장이 3일 오후 다시 김경한 법무부 장관에게 사표를 냈다. 그리고 곧바로 대검찰청 청사를 떠났다. 청와대는 즉각 “만류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지난달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냈다가 돌려받았던 사표와는 성격이 다르다. 사실상 사퇴한 셈이다.

○ 임채진 총장, 시기 앞당겨 사퇴

임 총장의 사퇴는 예고된 것이었다. 지난달 25일 사표가 반려됐지만,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 수사가 마무리되면 물러나겠다는 뜻은 확고했다. 그러나 수사가 막 재개되기 시작한 마당에 이날 임 총장이 갑자기 사퇴하자 검찰 내부는 충격에 휩싸였다.

임 총장이 사퇴시기를 앞당긴 데에는 2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한다. 대검 중수부가 그동안 진행해 온 수사 전체에 대한 신뢰성이 문제가 될 조짐이 나타나자 검찰 조직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 기왕 물러나기로 한 ‘사퇴 카드’를 선제적으로 던졌다는 얘기다.

3일 오전 임 총장은 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사의를 표명했으나, 김 장관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며 강하게 만류했다고 한다. 집무실 밖으로 고성이 흘러나올 정도로 두 사람은 사퇴 문제로 격론을 벌였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임 총장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오후 2시 반경 조은석 대검 대변인을 통해 사퇴의 변을 밝힌 뒤 청사를 떠났다. 임 총장은 자택으로 가지 않고 지방의 모처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총장은 지인들에게 “마음이 편하다. 돌아갈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고 한다.

청와대는 임 총장의 사퇴의사가 확고해 사표를 수리하기로 했지만, 임 총장의 ‘일방적인’ 사퇴에 불편해하는 기류가 역력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오후 브리핑에서 “검찰총장으로서 겪었을 인간적 고뇌를 이해한다. 그러나 선공후사(先公後私)다”라고 말했다.

임 총장은 지난달 25일 사표를 일단 되돌려 받기는 했지만, 이를 대검 사무국장에게 맡겨놓았다. 사퇴 의사를 번복한 게 아니라 언제라도 떠나겠다는 ‘사퇴 보류’의 뜻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진 뒤인 지난 주말 임 총장은 주변의 지인들에게 “구차하지 않게 명예롭게 물러나는 길이 뭐냐”라고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못해 ‘정치적 희생양’으로 떠밀리듯이 물러나지는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 개각과 함께 후임 검찰총장 지명될 듯

청와대는 당장 후임 검찰총장을 지명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 전면 쇄신이 거론돼 오던 상황이라 청와대와 정부의 인적 쇄신과 함께 새 검찰총장도 지명하는 게 순리이기 때문이다. 정부 내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16일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늦어도 7월 초까지는 개각을 단행할 계획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경우 김경한 법무부 장관도 물러나면서 법무부 장관-검찰총장 라인이 새로 구축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당분간은 문성우 대검 차장이 검찰총장 직무를 대행하면서 검찰 조직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후임 검찰총장으로는 권재진 서울고검장(사법시험 20회)이 유력한 가운데 명동성 법무연수원장(사시 20회), 문 차장(사시 21회), 이귀남 법무부 차관(사시 22회) 등도 후보로 거론된다. 파격적으로 외부 인사가 기용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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