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지난해 국세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 당시 청와대로부터 ‘이 사건에 관여하지 말라’는 취지의 경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일각에서는 대학 동기인 이명박 대통령이 천 회장에게 직접 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 시점과 이유, 경로 등을 놓고 여러 가지 추측이 일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19일 “천 회장이 태광실업 세무조사 무마에 관여하려고 했을 때 이 대통령이 직접 천 회장에게 ‘이 사건에는 관여하지 말라’는 취지로 얘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천 회장도 이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지인들에게 청와대의 경고를 받은 사실이 있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천 회장은 청와대 경고를 받은 직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 전 국가보훈처장에게 “도와줄 수 없으니 알아서 잘하라”고 했다는 일까지 공개했다는 것. 천 회장은 최근 ‘신동아’ 6월호와의 인터뷰에서도 “‘태광실업 세무조사 문제엔 개입하지 말라’는 정부 측 경고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저와 가까운 사람이 ‘태광실업 세무조사 문제는 관계하지 않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해주었다”라고 밝혔다.
천 회장의 주변 인사 등에 따르면 천 회장은 특히 박 전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대책회의에 자신이 참석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해명 차원에서 이 얘기를 자주 꺼냈다고 한다. “청와대로부터 경고까지 받았는데, 어떻게 세무조사 무마 로비 대책회의에 갈 수 있었겠느냐”면서 세간의 의혹을 일축했다는 것.
그러나 청와대가 천 회장에게 경고까지 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천 회장이 세무조사 무마 로비에 깊숙이 관여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일 수 있다. 천 회장이 태광실업 세무조사에 아무 관여도 하지 않았다면 굳이 청와대가 나서서 경고까지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천 회장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8월 초 박 전 회장에게서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아 ‘알아보자’고 말했다”고 밝혔고, 검찰은 천 회장이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 등과 직간접으로 접촉한 정황까지 파악했다.
박 전 회장이 지난해 9월 또 다른 현 여권 인사인 추부길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구속 기소)을 통해 한나라당 이상득 정두언 의원에게 접근한 것도 청와대의 경고 때문에 천 회장의 운신이 어렵게 되자 다른 로비 경로를 찾아 나선 것일 수 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