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의 로비 안 통했을 것” 국세청, 자신감 속 불안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7분


입지 위태했던 한前청장 승부수로 박연차 세무조사
국세청 “싹쓸어갔다” 불만 검찰, 자료 이틀만에 반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수사 중인 검찰의 관심은 박 전 회장의 전방위 로비 시도가 국세청에서도 실제로 통했을까 하는 점에 모아져 있다. 이 대목에서 국세청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로비 시도는 있었을지 몰라도 로비가 통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광실업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작심하고 던진 ‘승부수’ 성격이 짙기 때문에 로비에 밀려 세무조사 강도를 낮추거나 결과를 축소했을 개연성은 없다는 것이다.

한 전 청장은 노무현 정권 말기에 임명돼 현 정권 출범 초기에는 입지가 취약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해 5월경 예산 7억여 원을 들여 본청 14층에 있던 청장 집무실을 12층으로 옮겨 ‘풍수지리 전문가의 말에 솔깃해 예산을 낭비했다’는 구설수에 올랐다. 당시 청와대가 경위 파악에 나섰고 한 전 청장이 사표까지 제출했다가 반려됐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런 위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박 전 회장을 겨냥한 세무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에 적당히 세무조사를 얼버무릴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 전 청장은 세무조사에서 큰 성과를 냈고, 지난해 말에는 유임설이 국세청 주변에 퍼졌다.

하지만 국세청 일각에서는 한 전 청장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경우의 후폭풍을 걱정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검찰의 국세청 압수수색으로 자존심이 손상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 전 청장이 소환되면 개인비리로 구속 기소된 이주성, 전군표 전 청장에 이어 3대가 연이어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는 점도 국세청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한편 검찰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실 등 6곳을 전격 압수수색한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국세청을 다독이려는 모습을 보였다. 검찰은 선별된 자료만 제출받는 형식이었다고 강조했지만 국세청 직원들은 “직원들 다이어리까지 싹 쓸어갔다”고 불만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8일 압수수색한 박 전 회장의 세무조사 자료에 대해 “누락되거나 왜곡된 것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강조했고, 오후에는 압수수색 자료를 국세청에 모두 돌려줬다. 신속히 돌려주기 위해 검사 7명이 밤을 새워 자료를 검토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국세청이 민감해하는 전산실 압수수색에 대해서도 “박 전 회장의 세무조사와 관련해 실무자들의 e메일만 봤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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