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박연차 ‘5000원 줬다’는 말은 5000만원”

  • 입력 2009년 3월 27일 02시 58분


■ 통큰 朴의 로비자금 어법

“만원은 1만달러 뜻해”

‘5000원=5000만 원, 만 원=1만 달러.’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이나 로비 자금을 건넸다는 진술을 할 때 ‘5000원’ ‘만 원’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처음에는 박 회장이 “○○○에게 5000원을 줬다”고 진술하자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 그러나 ‘5000원’은 바로 ‘5000만 원’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점차 박 회장의 어법에 익숙해졌다. 예컨대 1억 원을 건넨 경우에는 “5000원 두 개를 줬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이 금품을 건넸다는 검찰 진술조서에도 5000만 원은 5000원으로, 1만 달러는 만 원으로 기재돼 있어 검찰은 송은복 전 경남 김해시장(구속) 등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때 담당판사에게 이에 대한 설명을 따로 했다고 한다.

홍만표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26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회장이 실제로 직원에게 ‘5000만 원을 갖다 주라’고 지시할 때에도 ‘5000원 갖다 줘’라고 말했다고 한다. ‘5000원, 만 원’이 입에 습관처럼 딱 붙어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처럼 거액의 금품 제공을 가볍게 생각하는 습관이 박 회장의 통 큰 씀씀이를 보여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정관계 유력 인사들과 친분을 쌓고 공생관계를 형성하는 데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박 회장은 탄탄한 현금 동원력과 과감한 성격을 무기로 정치권은 물론 청와대, 검찰, 경찰, 국세청 등 힘 있는 권력기관의 유력 인사들에게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이 검찰 수사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박 회장은 국세청 상대 로비 의혹에 대해선 진술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수사와 재판이 끝난 뒤 기업가로서 재기를 해야 하는 박 회장이 자신의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세청 인사들은 최대한 보호하려고 한다는 얘기다.

박 회장의 막강한 자금력은 그의 주위로 유력 인사들을 끌어들였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는 박 회장의 현금으로 경남 지역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까지 개입하는 대신 박 회장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노 씨가 박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 전 중부지방국세청장을 여러 차례 국세청장 후보로 추천했다”며 “그러나 박 회장의 사돈이라는 점 때문에 결국은 탈락했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박연차 리스트’에 오른 전현직 판검사 및 경찰 간부 등에 대해서는 정치권에 대한 수사를 우선적으로 마무리한 뒤 4월 중에 본격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초기에 검찰 간부 등에 대한 수사에 들어가면 다른 수사를 하기도 전에 검찰 조직이 흔들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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