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무조건 많이? 제대로 많이!”

  • 입력 2009년 2월 24일 02시 58분


독서의 힘… 어른들 모두 물리친 초등 5년 퀴즈왕 “이렇게 읽어요”

《“학습만화인 ‘먼 나라 이웃 나라’ 하고요, 일본에 대해 쉽게 풀어 쓴 책을 몇 권 읽었어요. 이번에 도쿄, 오사카, 교토에 가는데요. 인터넷이랑 책 보면서 자료 모으고 있어요. 계획을 잘 세워서 어디에서 뭘 보고 올지 생각해야 해요.” KBS 퀴즈프로그램 ‘퀴즈 대한민국’에서 성인 경쟁자 5명을 물리치고 역대 최연소 ‘퀴즈영웅’이 된 신정한 군(11·경북 고령군 고령초등학교 5학년)은 16일 전화 인터뷰 중에도 한껏 들떠 있었다. 다음 날 가족과 떠나는 여행 준비를 하느라 바쁜 모양. 우승 직후 “책을 많이 읽어서 퀴즈 영웅이 된 것 같다”고 말했던 신 군. 듣고 보니 책을 ‘그냥’ 많이 읽은 것이 아니었다. ‘많이’ 그리고 ‘제대로’ 읽는 비결은 뭘까?》

○ 중국집 메뉴판을 읽고 또 읽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보나요.”(기자) “아니오.”(신 군) “게임 ‘메이플 스토리’는?”(기자) “음∼, 안 해요.”(신 군) “(뻔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기자) “책이오!”(신 군)

어제까지 신 군이 들고 있던 책은 ‘만들어진 역사’(조셉 커민스). 역사에 획을 그은 중대한 사건을 선정해 배경, 과정, 결말, 인류에 끼친 영향 등에 대해 쓴 430쪽짜리 책이다.

신 군과 책의 첫 만남은 생후 6개월 때 시작됐다. 당시 고령에는 변변한 어린이 서점이 없었다. 서점이 있는 대구까지는 버스로 1시간. 어머니 서정희 씨(40)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신 군을 업고 대구로 갔다.

“깨끗한 옷을 입혀도 돌아올 때는 새카매졌어요. 서점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책을 봤지요. 장난감보다 책을 좋아했어요.”(어머니)

하루는 이웃집 아줌마가 길에서 신 군을 봤다고 했다. 꼬마가 한참을 길에 앉아 있어 살펴보니 중국집 메뉴판을 반복해 열심히 읽고 있더란다. 여섯 살 때 일. 그만큼 활자에 관심이 많았다.

○ 현장학습, 100배 이용하다

아버지 신상진 씨(41)는 지방에 살아 상대적으로 문화를 접할 기회가 적은 아들을 위해 주말이면 ‘현장학습 가이드’를 자임했다. 작년에는 1박 2일로 상경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전을 보고 전쟁기념관과 청계천을 둘러봤다.

체험학습 장소가 정해지면 신 군은 책부터 펼친다. 예습은 필수. “가령 경주에서 황룡사 표지판이 나오면 정한이는 미리 공부한 내용을 되짚으며 황룡사에 대해 설명을 시작해요.”(아버지)

돌아오는 길에 신 군은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페르시아에는 황금 유물이 많던데 그 많은 금이 어디서 났을까?’ 같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신군은 또 한 번 책을 펼친다.

신 군에게 세상은 학교, 학원, 집만이 아니다. TV 뉴스를 보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신문을 정독한다. 독도문제나 용산 참사 등 사회적인 이슈에도 관심이 많다. 생각지 못한 날카로운 비판에 엄마 아빠가 놀랄 때도 많다고.

신 군이 학원이나 과외에 치이지 않는 것도 책 읽는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신 군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독서토론 수업 외엔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성적은 늘 전교 1, 2등을 다툰다.

○ ‘A→B→C→A’ 독서법이란?

신 군의 방은 삼 면이 책으로 둘러 싸여 있다. 세계사와 역사, 과학 분야의 책을 좋아한다. 특히 세계의 수도, 우주, 건축, 문화재에 관심이 많다. 집에 있는 책만 1200∼1300권. 인근 도서관에서도 매주 아홉 권씩 빌려오고 지역아동센터에서도 책을 빌려 보았으니 정확히 얼마나 읽었는지 알 수 없다. 저학년 때는 한 권을 여러 번 읽었다. 내용을 외워 말할 정도였다.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책은 두세 번씩 읽었어요. ‘달님 안녕’이라는 동화는 너무 많이 읽어서 볼 수 없을 정도로 낡아 새로 사줬어요.”(어머니)

요즘 신 군의 책엔 책갈피가 많이 꽂혀 있다. A책을 읽다가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잠시 멈추고 모르는 부분을 설명해줄 수 있는 B책을 찾는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또 다른 C책을 꺼내 읽는다. 읽다 보면 내용을 이해하고 다시 A로 돌아온다.

신 군은 가장 어려웠던 책으로 사서오경(四書五經)을 꼽았다. 어려운 책은 한 번에 끝까지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른 책으로 머리를 식히다가 읽고 싶을 때 다시 읽는다.

○ 누구에게도 안 보여주는 ‘비밀노트’

독서 후 신 군은 그 누구에게도 절대 보여주지 않는 ‘비밀노트’를 쓴다.

“비밀노트는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할 때 써요. 중요한 걸 잊지 않기 위해서요.”

하루는 신 군이 “비밀노트를 잃어버렸다”며 울상이 됐다. 집 한구석에서 찾아낸 세 권의 비밀노트. 어머니 서 씨도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노트를 살짝 봤다고.

“원소기호도 적혀있고 국기를 그린 것도 있었어요. 어떤 단어들을 설명하는 글도 4, 5줄씩 정리가 돼있더라고요.”

비밀노트에 쓴 내용을 한 가지 알려달라고 신 군에게 부탁했다. 신 군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이야기를 꺼냈다. 32강에 오른 팀이 어떤 나라일까 궁금해서 책과 인터넷을 보고 그들 나라를 정리했단다. 나라별로 국기를 그리고 축구팀 정보를 요약해 적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이거 조사해보면 어떨까?’라고 자주 물었어요. 답을 알아오면 엄마한테 설명해 달라고 했지요. 확인하고 정리하면서 기억에 확실히 남겼던 것 같아요.”(어머니)

책을 읽은 후엔 그림이나 짧은 글로 감상을 표현하도록 지도했다. 서 씨가 직접 만든 워크북을 활용하기도 했다. 워크북에는 서 씨가 만든 문제와 그림 퀴즈 등이 빼곡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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