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예순의 ‘춘’ 빛나는 초등 졸업장

  • 입력 2009년 2월 19일 06시 18분


“선생님과 친구들의 따뜻한 사랑으로 교문을 나서게 됐습니다. 소중한 추억을 가슴에 담고 힘찬 앞날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겠습니다.”

18일 전남 강진군 도암면 도암초등학교 졸업식장. 나이가 지긋한 한 졸업생이 전교생과 교사들 앞에서 ‘감사의 편지’를 낭독했다. 졸업생을 대표해 편지를 읽은 학생은 김춘엽 씨(60·여).

김 씨가 “선생님께서 주신 크나큰 사랑을 깊이 새기며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겠다”고 다짐하자 후배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김 씨는 졸업식이 끝난 뒤 손자뻘 되는 반 친구들과 포옹하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몇몇 친구는 김 씨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김 씨의 옛 초등학교 동창생도 졸업식장을 찾아 김 씨의 졸업을 축하해줬다. 김 씨와 같은 마을에 살았던 김영수 씨(61·강진군의회 의원)는 “만학의 꿈을 이룬 옛 동창생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꽃다발을 안겼다.

도암면이 고향인 김 씨는 44년 만에 초등학교 6학년을 다시 다녔다. 1964년 졸업을 이틀 앞두고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기 때문. 집안 형편이 어려워 20여 일을 결석한 게 이유였다.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한 뒤 시민권을 얻은 김 씨는 2년 전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뒤 지난해 4월 교육청의 허가를 얻어 이 학교 6학년에 복학했다.

본보 2008년 12월 12일자 A13면 보도 ▶ 59세 초등생의 44년전 꿈찾기

무엇보다 김 씨에게 소중한 친구들은 반 아이들 14명이었다. 김 씨를 ‘춘’이라고 불렀던 반 아이들은 겨울방학이 끝나는 날 편지를 보내왔다.

김 씨와 가장 친했던 임효준 군(13)은 “처음 학교에 왔을 때 어떻게 저 나이에 학교를 다닐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루지 못할 꿈은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썼다.

남궁진 군(13)은 “사탕을 주고 딱지도 빌려준 춘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며 “열심히 공부하는 춘을 지켜보면서 목표가 확실해졌고 가고 싶은 대학도 생겼다”고 했다.

김 씨도 아이들에게 답장을 썼다.

임 군에게 김 씨는 “너의 실내화 앞쪽이 터진 것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단다. 실내화를 사다 줬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던 너를 잊지 못할 거야. 꼭 강진을 빛내는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3월 강진여중에 진학하는 김 씨는 “45년 만에 졸업장을 받으니 꿈만 같다”며 “남보다 늦은 만큼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까지 가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이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을 보살피며 모든 일에 솔선수범한 김 씨에게 봉사상을 수여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