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 입력 2009년 2월 16일 02시 58분


유토피아보다 더 비현실적인 오늘날의 현실

약 500년 전 영국은 온통 도적 떼로 들끓었다. 아무리 처벌을 강하게 해도 폭력과 도둑질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은 교수대 하나에 스무 명의 목을 매달 정도였다. 그래도 범죄는 늘어나기만 했다. 도대체 왜?

포르투갈 출신의 모험가 미카엘은 명쾌한 답을 던진다. 사람들이 훔치고 빼앗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권력자는 농민의 땅을 차지했다.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마땅한 일자리는 없었다. 반면, 놀고먹는 사람은 너무 많았다. 귀족은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호화스럽게 살았다. 그들의 시중을 드는 이의 수도 적지 않았다. 미카엘은 결론을 내린다. “당신들이 시민을 도둑으로 길렀으면서도 그들이 도둑질을 하면 처벌합니다.”

미카엘은 현실의 비극을 바로잡기 위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는 아메리고 베스푸치(아메리카 대륙의 이름이 된 유명한 탐험가) 일행에 섞여 먼 곳을 여행했다. 그러던 중 미카엘은 ‘유토피아’라는 멋진 섬나라를 찾아냈다. 그 곳은 영국이 본받아야 할 모델이라고 할 만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미카엘이 들려주는 유토피아 이야기이다.

유토피아에서는 사람들이 여섯 시간만 일한다. 그래도 모두가 풍족하고 여유롭게 산다. 노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도 모두 일을 한다. 일손이 넉넉하니 생산물도 많다. 반면, 사람들은 사치할 엄두를 못 낸다. 열다섯 가구씩 공동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식사도 함께 한다. 밥상을 나누는 사이에서 홀로 호사를 부리기란 낯 뜨거운 일이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여가 시간을 교양을 쌓는 데 보낸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생각은 아주 건전하다.

예컨대 어떤 이가 멋진 양털로 된 옷을 입었다고 해도 아무도 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멋진 양털은 원래 양의 것이다. 사람이 양의 털을 빼앗아 쓰고 우쭐거릴 이유가 뭐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돈 욕심을 부릴 리가 없다.

사회 제도도 ‘쿨’ 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단 법이나 정책안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는 논쟁을 벌이지 못한다. 적어도 하루 동안 따져볼 여유를 갖기 위해서다. 말꼬리 잡는 데 열 올리는 소모성 논쟁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유토피아에서는 법률의 수가 아주 적다. 법조항은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법은 외려 갈등을 키우기도 한다. ‘법 전문가’들은 어지러운 법 조항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인다. 그럴수록 오히려 진실은 점점 흐려지고 궤변이 판을 친다. 유토피아에는 법률가가 없다. 시민들은 법정에서 자기 입으로 쉬운 말을 써서 주장을 펼쳐야 한다.

종교에도 강제가 없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진리를 담은 종교가 결국 사회를 지배하는 신앙이 되리라 믿는다. 종교끼리 경쟁하고 의견을 나누는 가운데 어느 쪽이 올곧은 신을 따르는지가 자연스레 결론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소설이다. 유토피아라는 말 자체가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현실에서 이런 꿈같은 나라가 있을 법하지 않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우리네 삶도 유토피아만큼 비현실적이다.

한쪽에서는 물건을 잔뜩 쌓아놓고 팔리지 않아 고민이다. 다른 편에서는 많은 사람이 물건 살 돈이 없어 궁핍하게 살아간다.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지만 다른 쪽에서는 일꾼수를 줄이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우리는 풍요롭지만 가난한, ‘비현실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유토피아는 현실에 없는 꿈이다. 이같이 비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차라리 유토피아가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가 자본주의의 대안을 담은 책으로 널리 소개되는 이유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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