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답답한데 바다 가자며 유혹…착하게보여 의심안해”

  • 입력 2009년 2월 4일 03시 01분


검찰 송치되는 강호순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강호순 씨가 검찰로 송치되기 전에 그동안 조사를 받았던 경기 안산시 상록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안산=이종승  기자
검찰 송치되는 강호순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강호순 씨가 검찰로 송치되기 전에 그동안 조사를 받았던 경기 안산시 상록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안산=이종승 기자
강호순에 ‘6시간 차량감금’ 생존 여성이 털어놓은 ‘오싹했던 그날’

“독신자모임에서 강씨 처음 만나… 부동산한다며 있는 척 행세

걷고 싶다면서 차에서 자꾸 내리라고 강요해 조금씩 무서워져

차 세워놓고 협박 - 애교…계속 버티자 새벽 4시 차에서 잠들어

그 남자를 다시 만나면 왜 나는 살려줬는지 꼭 물어보고 싶다”

경기경찰청 수사본부가 3일 연쇄살인 피의자 강호순(39) 씨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강 씨가 군포 20대 여성 안모(21) 씨를 살해한 뒤 12일 만인 12월 31일 또 다른 여성 김모(47) 씨를 자신의 에쿠스 승용차에 6시간 동안 감금하고 유혹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 이목이 쏠렸다.

경찰 관계자는 “강 씨가 사교모임의 회원들에게 자신의 얼굴이 알려진 데다 통화기록 때문에 범행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살해 등의) 범행을 자제하는 치밀함을 보였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경찰이 언급한 경기지역의 생활정보지들에 실린 독신자모임 광고 등을 뒤지고 모임 참석자들을 접촉한 끝에 김 씨와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김 씨의 육성으로 당시 상황을 들어본다.

○ 이혼남녀 모임에서의 만남

뉴스에서 강 씨의 얼굴을 보고 너무 놀랍고 무서워서 밖에도 못 나가고 있다. 그 사람, 너무 착하게 보였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지난해 12월 31일 경기 안양시 인덕원의 한 호프집에서 열린 독신자모임에 나갔다가 강 씨를 만나게 됐다. 그 모임은 남자는 2만 원, 여자는 1만 원만 내면 참석이 가능한 30∼50대의 사교모임이었다. 회원들은 대개 ‘돌싱(돌아온 싱글·이혼자)’들이었다. 1년 전부터 나가는 모임인 데다 연말이고 해서 부담 없이 나갔다. 친한 언니도 온다고 하고….

1차 자리에 모인 30여 명 가운데 잘생겨서 눈에 띄었다. 그런데 말수도 없고 자리도 멀리 떨어져서 이야기는 한마디도 못했다.

오후 9시경 1차가 끝나고 2차로 나이트클럽에 갔다. 클럽에서 그 남자는 ‘옆에 앉아라. 시끄러워서 별로 얘기를 못 하니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겠다’며 접근했다.

그때 이름을 ‘강호’(강 씨는 평소 강호축산 대표 강호, 또는 강호양봉 대표 강호순 등 2개의 명함을 사용), 나이는 43세라고 했다. 빛나는 회색 양복에 잠바를 입었고 전혀 그런 범행을 저지를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오후 10시가 되자 강 씨가 ‘답답하니 조용한 곳으로 나가서 얘기하자’고 했다. 모임에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나가면 욕먹을 것 같아 조금 더 있었다. 오후 11시 반경 나와 에쿠스를 탔다.

차도 사장님 차처럼 좋았고, 있는 척을 했다. 소도 키우고 부동산도 하고 있다고 하고, 동물을 좋아해서 돼지도 닭도 키우고 한다고 했다. ‘그 많은 동물을 누가 관리하느냐’고 물었더니 ‘관리인이 있다’고 했다. 집은 안산이라고 말했다.

아는 언니가 ‘가는 길에 데려다 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태워주었다. 원래는 나만 태워가려고 했는데 언니가 나보고 같은 길이니까 같이 타고 갈 수 없냐고 물어보라고 해서 물어봤더니 그냥 하겠다고 그러더라.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더니만.

나도 뒤에 타려고 했는데 언니가 나를 자꾸 앞에 타라고 했다. 그 사람하고 나하고 사귀기로 약속했던 걸로 오해를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앞에 타게 됐다.

○ 강호순의 유혹과 협박

중간에 언니가 내리고 나도 집 부근에 다 왔기에 내려달라고 했는데 “소주 한잔 더 하자”고 했다. 바닷가를 갔다 오자고도 그랬다. “집에 애들도 있고 해서 안 된다. 댁도 내일 출근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1월 1일인데 무슨 출근이냐. 늦게 나가도 된다”고 했다. 그래도 안 된다고 했다. 처음 봤는데 바닷가까지 가느냐고…. 그랬더니 소주 한잔 하자며 가까운 데 가자고 해서 시화호인지 저수지 같은 데를 갔다.

자꾸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바닷가라고 보라고도 했다. 아무리 봐도 저수지 같은 데였다. 날이 꽤 추워서 옷을 얇게 입고 가 추워서 싫다고 했더니 도로 차에 타라고 했다. 그랬더니 바다가 보고 싶으면 걷자고 하더라. 걸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다시 차를 타고 갔는데 어느 횟집 앞이었다. 거기서 회를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나는 소주를 두 잔 정도 마시고, 그 사람이 한 병 반을 먹었던 것 같다.

술 취하면 무슨 일 당하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해서 밥 먹으라고 하는데 안 먹었다. 무섭기도 하고 겁도 나고. 그때가 12시 조금 넘었던 시간이었다.

다시 차에 탔는데 내려달라고 해도 계속 운전을 해 감금당했다고 생각했다.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더니 모텔 앞에 차를 대놓고 술 취해서 못 가겠다고 했다. 자꾸 후진해서 편하게 쉬자고 해서 안 하겠다고 버텼다.

○ “안아 달라” 강호순의 애교 멘트

그랬더니 좋으면 갈 수도 있지 않느냐고 했다. 들어갔으면 큰일 났을 것이다. 모텔 앞에서 오전 4시까지 있었고 그 사람은 그냥 잤다.

막 안아 달라고도 했다. 춥다고. 그래서 안아줬더니 키스를 하려고 해서 내가 신발을 갖고 때리려고 했다. 그랬더니 ‘때려 때려’ 그러더니 다시 “아유, 자야지’하고 말했다.

무슨 일을 하려면 했을 텐데 왜 안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비쩍 마르고 지쳐 보이기도 하고. 나보고 처음에 사귀자고 해서 뭘 사귀느냐고 그랬다. 내가 나이가 어려 보여서 그러는가 보다 했다.

내려서 택시타고 가겠다고 했더니 못 가게 하면서 자기를 못 믿겠느냐고 하더니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막 성질을 내면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잤다. 음악도 틀고 히터도 틀어놓고. 백지영과 이선희의 노래도 있고 최신가요도 있는 테이프였다. 나는 듣기가 싫었는데 그 남자는 아침까지 들었다. 모텔 앞에서 소변이 마렵다고 차를 몰고 나갔다. 큰길에 멈추더니 소변보고 오겠다고 나가면서 꼼짝 말고 있으라고 했다. 도망가다 잡히면 더 당할까봐 도망도 못 가고, 택시도 없고. 들어와서 30분 더 자고 6시 조금 넘어서 빨리 데려다 달라고 했더니 일어나서 집에 바래다줬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 놀랐다. 다른 사람들이 받은 고통만큼 처벌해줬으면 좋겠다. 그 남자를 다시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왜 나는 살려줬는지.



안산=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동아닷컴 백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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