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자율에는 책임 따르는 법… 사교육 폐해 생각해야”

  • 입력 2009년 2월 2일 02시 59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인터뷰

―손 병 두 서강대총장에 들어보니

《서강대 총장인 손병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은 1일 “걱정입니다”라는 말부터 했다. 표정도 밝은 편이 아니었다. 최근 일부 대학이 2012학년도 입시 방안을 밝힌 것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그의 말과 표정에는 대교협 회장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이 묻어났다. 그는 대교협이 입시 업무를 넘겨받아 ‘제2의 교육과학기술부’로 불릴 만큼 권한이 막중해진 지난해 4월 회장에 취임했다.》

최근 입시안 경쟁적 발표 성급… 수험생-학부모 혼란

입학사정관 확대 등 대입전형 기본안 내년중에 선보여

서강대 3년간 고강도개혁… BK21 경영-물리학 사업단 선정 큰 성과

“2012학년도부터 입시를 자율화하겠다는 것이 정부 목표니까 우리가 소프트 랜딩을 잘 시켜야 합니다. 입시는 이해관계가 많고 전 국민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정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손 회장은 대입 자율화가 개별 대학이 중구난방으로 입시를 진행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교과부의 획일적인 규제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대학들이 하고 싶은 대로 입시안을 만든다면 국가·사회적 책임을 저버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지적이었다.

그는 “2012학년도부터 대학 입시가 자율화된다고 하더라도 공교육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책임이 있는 것”이라며 “각 대학이 나름대로 입시안을 정하겠지만 자율기구인 대교협의 틀 안에서 서로 협의하고 책임을 지는 선에서 입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에서는 교과부 대신 대교협이 시어머니 노릇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물론 대학에서는 ‘이제 자율화인데…’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대입 자율권을 준다고 하더니만 대교협이 간섭을 한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도 교육부가 없는 대신 주마다 대학 연합체가 교육의 품질을 논의합니다. 입시는 워낙 중요한 문제니까 중지를 모으고 서로 보완해서 자율화 여건을 성숙시켜야 합니다.”

손 회장은 자율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의 언성이 조금씩 높아졌다.

―그렇다면 대교협이 구상하는 2012학년도 입시의 틀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선진형 입시제도입니다. 이제는 점수로만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처럼 학교 추천이나 입학사정관의 종합 평가, 학생들의 에세이 등으로 인재를 뽑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 교과부가 무조건 본고사를 보지 말라고 했지만 그 결과 사교육비는 얼마나 늘었으며 공교육은 또 얼마나 엉망진창이 됐습니까? 해법은 무조건적인 금지가 아닙니다. 점수만 가지고 대학에 들어가는 시스템, 사교육을 부추기는 시스템을 선진형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지난달 대교협 총회에서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하겠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입니까.

“시골 학생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도시 학생에 비해 몇 점 떨어지더라도 이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좋다면 수능만이 잣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학사정관제와 같은 전형 방법이 필요합니다. 정부의 입학사정관 지원 예산이 대폭 늘었고 대교협도 입학사정관 교육 훈련 및 선진국 노하우 전수 등에 집중 투자할 계획입니다. 입학사정관제 성공의 관건은 전문가 훈련에 있습니다. 외국의 입학사정관과 교류하면서 전문적으로 훈련하고 지도해서 누가 봐도 전문가라고 인정할 만한 입학사정관을 많이 키워내는 것이 선진국형 입시의 지름길입니다. 아직은 시행 초기라서 입학사정관 대부분이 임시직이지만 전문성을 인정받으면 바로 정규직으로 안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진 입시제도를 강조하셨지만 대학들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교협 회원들은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계속 논의할 예정입니다. 그런데도 만약 어떤 대학이 이상한 입시안을 내놓는다면 윤리위원회에서 제재를 가할 것입니다. 유형적인 제재 수단이 충분히 있으며 적절하게 발휘될 것입니다. 어떤 대학이 신뢰를 안 지킬 경우 대학 사회는 물론 국민으로부터 성토를 당하고, 무리한 시험을 강행하는 대학은 국민도 외면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편법을 쓰는 기업이 처음에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국민에게 외면받고 무너지는 것처럼 국민이 보내는 무형의 제재가 무서운 것입니다.”

손 회장은 선진 입시제도를 정착시켜 노무현 정부 시절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었던 ‘3불’(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이라는 말이 더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3불 정책을 허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3불 정책 자체가 무의미해지도록 하자는 취지다.

“고교들이 각자 개성을 살려 특성화하면 고교를 한 줄로 세울 수 없게 돼 고교등급제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대학들이 입학사정관이나 추천제 등 다양한 선발 방법을 개발하면 옛날식 본고사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다만 기여입학제는 민감한 문제이므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 때까지 일단 미뤄 두자는 생각입니다.”

―최근 일부 대학이 2012학년도 입시안을 공개했습니다.

“우리(서강대)도 이미 2012학년도 입시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그때 상황을 봐서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2012학년도 이후에 입시 여건이 어떻게 달라질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개별 대학들이 벌써부터 입시안을 말하지 말고 충분히 연구해야 합니다. 대교협이 입시안을 연구하고 중심을 잡아가는 상황에서 개별 대학이 앞 다퉈 입시안을 얘기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을 키울 수 있습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위해 언론들도 2012학년도 입시안에 대해 벌써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손 회장은 입시 선진화를 위해 서강대의 경우 매년 입학업무 담당 직원들이 전국 고교 300곳을 방문해 학생들의 교육 내용과 질을 평가하고, 이것을 계속 입력해서 데이터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5년 서강대 총장에 취임한 후 2007년 대교협 부회장과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장 등을 맡았지만 그는 원래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출신. 그래서인지 효율과 성과도 강조했다.

―1일자로 대교협의 조직 개편을 단행해 기존의 관료적인 조직을 유연한 팀제로 바꾸었는데요.

“입시 전담 조직, 대학의 품질관리를 위한 인증, 교육제도를 장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정책연구, 교원 연수 기능을 강화해 행정조직을 최소화하는 대신 대학에 서비스할 수 있는 조직으로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대교협 못지않게 서강대의 변화 속도도 빠른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에 두뇌한국(BK)21 중간평가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는데요.

“이번 중간평가를 통해 경영전문대학원(MBA)과 물리학 분야의 대형 사업단 2개를 따냈습니다. 처음 대학에 왔을 때는 BK21 사업을 잘 몰랐고 모금만 하느라 뛰어다녔습니다. 그런데 2006년 2단계 BK21 선정 결과를 보니 참혹하더라고요. 원인 분석에 착수해서 연구력 증대를 위해 뛴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이 주효했는지 궁금합니다.

“우수한 교수를 상시 채용할 수 있도록 교원 채용 과정을 바꾸고 우수한 학부에 돈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등 연구 기반을 다졌습니다. 교수 역량 강화를 위해 안식년을 연구년으로 바꾸고, 논문을 3편 이상 써야 연구년을 가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손 회장은 “학부별로 평가를 할 때 내가 세운 평가 지표 70%와 교수들이 자율적으로 세운 평가 지표 30%를 합쳐 전문가들이 평가를 하도록 했다”며 “1위 학부는 2억5000만 원을 지급했다. 나는 돈만 주면 되더라” 하면서 웃었다.

서강대는 곧 MBA 부문에서 BK21에 선정됐는가 하면 교과부의 교육성과지수에서 포스텍에 이어 전국 2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물리학 분야의 BK21 사업단 선정을 계기로 국내 대학 가운데 과학 부문의 첫 노벨상을 배출하겠다는 꿈에 접근하고 있다.

경제인 출신으로 총장이 돼서 어려움이 많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자신이 잘못된 선례를 남겨 최고경영자(CEO)나 비(非)교수 출신의 총장 진출을 막을까 봐 정말 열심히 뛰었다고 답했다.

손 회장은 외국인 신부들이 총장을 맡았던 1980년대처럼 외국인 교수와 학생을 많이 유치해 국제화 지수도 높였다.

손 회장이 취임할 당시 12%였던 영어 강의 비율은 30%로 높아졌고 현재 교류를 맺은 외국 대학도 160곳에 이른다. 70%나 되던 등록금 의존율도 53%로 낮췄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전국 4년제 대학들이 학사, 재정, 평가 등에 대해 상호 협력하기 위해 1982년 설립한 협의체. 1984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법이 제정되면서 전국 4년제 대학의 총장을 회원으로 하는 법정 기구가 됐다. 회원 대학은 창립 당시 97개교에서 현재 198개교로 늘어났다. 현 정부의 대입 자율화 방침에 따른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그동안 교육과학기술부가 가지고 있던 대입전형기본계획 수립 권한이 지난해부터 대교협으로 넘겨졌다. 2009학년도부터 대교협 산하의 대학입학전형위원회(위원장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가 입시에 관한 사항을 총괄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대교협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입시 원칙을 어긴 대학을 제재하는 권한도 교과부에서 대교협으로 넘어간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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