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피의자 진술만 옮기고, 얼굴은 가려주고…”

  • 입력 2009년 1월 29일 12시 44분


군포 20대 여성 살인사건 발생 이후 인터넷 등에는 ‘피의자 인권 보호’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이 범인 강 씨가 ‘여성이 차에 순순히 따라 탔다’고 진술한 것을 그대로 발표하는 등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가족과 누리꾼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

◇피해자가 순순히 범인의 차에 탔다고?◇

실종 한 달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군포 20대 여성의 유가족들은 ‘고인의 평소 행동으로 보건대 순순히 탔을 리가 없다’고 경찰 발표에 불신을 드러냈다. 지인들도 ‘그 친구는 심야에 택시를 타는 것도 꺼려 일찍 귀가하는 편 이었다’고 언론에 밝혔다.

인터넷에선 ‘군포 20대 여성은 과연 범인의 차에 순순히 탔을 까’를 두고 믿지 못하겠다는 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아이디 ‘y6in12’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고급차로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해서 따라 탔겠는가. 기사를 보니까 피해자가 사회경험도 있던데, 분명 범인이 거짓말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jurima99’는 “남자가 강제로 태웠을 가능성이 크다. ‘타라고 했더니 여자가 타더라’는 말은 범인의 진술일 뿐 진실이 아니다. 그런데 마치 그것을 사실인양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완력으로 20대 여성을 납치했다면 공범이 더 있을 것이라고 보는 의견 일부도 있었다.

한편 범행장소는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외딴 곳이어서 추운 날씨 속에 장시간 서 있을 경우 차에 태워주겠다고 하면 호의를 받아들여 차에 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최초 범행 순간에 대한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피의자의 일방적 진술에만 의존해 범죄의 순간을 발표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범인 입장에서는 형량을 낮추고자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 더구나 피의자는 평소 주변에 자신의 성적 매력을 자랑하는 과시적 성향의 인물”이라며 “범인이 길을 묻는 등 접근하다가 남들이 보지 않으니까 완력이나 흉기로 납치했을 수 도 있고, 최근 경기도 고양시 납치 사건에서 보듯 마취제를 썼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표 교수는 “피의자의 말을 보도를 할 때는 신중하게 하고 객관적인 증거나 정황 등을 합리적으로 가려서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스크로 범인 얼굴 가려줘야 하나◇

또한 범인의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해 언론에 노출 될 때마다 마스크를 씌운 것도 또다시 도마 위의 올랐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에서는 흉악무도한 범인을 사형시키기 위해 사형제를 폐지해선 안 된다는 여론까지 확산되고 있다.

지난 27일 현장 검증 당시 강씨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철저하게 가린 채 등장했다. 현장검증을 지켜보던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인면수심이 따로 없다. 당장 얼굴을 공개하라’고 울분을 토했다.

인터넷 아이디 ‘향수님’은 “보호가치가 있는 인권만 보호하자. 피해 입은 가족들 모습은 현장감 있게 보도하면서 살인자의 모습은 인권보호라고 얼굴을 감춰주는 것은 아이러니다”라고 말했다.

강 씨의 마스크를 벗겨 얼굴을 공개하고 다른 미해결 성폭행 살인과 관련이 있는지 제보를 받으라는 요구도 빗발쳤다.

아이디 ‘uhowglobal’은 “강 씨의 얼굴이 공개되면 날짜별 동선과 그간 미수에 그친 범행은 물론 여죄와 관련해 제보가 빗발칠 것”이라고 말했다. ‘seoul212’는 “일본의 경우 잔인한 살인마가 잡히면 얼굴, 신상정보가 모두 공개되지만 이를 두고 인권침해 운운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가해자 아버지가 나와 방송에서 ‘죄송하다’며 공개 사과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GimSac’는 “범행 방식을 보건대 수많은 살인을 했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몇 푼 돈 떼어 먹고 도주한 사람들의 얼굴도 공개 수배하면서 이런 인간을 가려주는 것은 코미디일 뿐”이라고 질타했다.

이와 관련해 이번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 이정달 경감은 “마스크와 모자를 다 벗겨서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수사하는 입장에서 그럴 수 없다”고 29일 언론에 밝혔다. 피의자의 얼굴을 가리는 이유는 바로 경찰의 훈령 때문이다. 2005년 10월 4일 경찰은 훈령으로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을 마련했고 이 안에 ‘피의자와 피해자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거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나와선 안 된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범인이라도 인권을 먼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국대 김상겸 교수는 “마스크를 씌워주는 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 같다”며 “구체적으로 범죄자의 인적 사항을 세세히 알려주는 것은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나, 얼굴과 성명 정도를 알려주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설령 범죄자의 인격권이 침해된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국민의 알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형제 존폐 논란에도 불똥◇

피해자의 손톱을 자르고 지문을 없애는 등 강 씨의 수법은 잔인했다. 네 번째 부인과 장모의 화재 사망 사건 등 여죄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강 씨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사형제 폐지 반대 논란에 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는 6월11일에는 사형제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재판소 사건에 대해 공개 변론이 예정 돼 있다. 지난해 광주고법이 지난해 ‘70대 어부 남녀 여행객 연쇄살인 사건’ 재판과 관련해 위헌심판을 제청한 것이다. 그동안 사형제에 대한 헌법소원은 수차례 제기됐지만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난 1996년 7대 2로 내린 합헌결정이 뒤집힐지 주목된다.

하지만 인터넷에선 “강 씨는 사형시켜야 한다. 그는 살인마 일뿐 인간이라고 볼 수 없다.(kjjh1221)”, “사형을 하더라도 그냥 평범하게 해선 안 된다. 그래야 고인이 편히 눈을 감는다.(redbabarian)”, “우리나라가 인권 국가가 되지 않아도 좋다. 작정하고 사람 죽은 인간들은 사형 선고 나면 바로 시행해야 한다. 전 국민 서명운동이라도 하자.(os123)”라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화살을 사형제 폐지 여론을 이끄는 인권 단체에 돌리는 의견도 상당했다. “안타깝지만 이 사람은 절대로 사형 당하지 못한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며 소일거리 하시는 인권위 관계자와 시민단체 인사들 덕분에 앞으로도 잘 살 것(medkkwang)”, “사형은커녕 5년쯤 지난 후 ‘어느 사형수의 따뜻한 편지’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올 것.(ncncbc)” 등이다.

현재 사형 확정자는 58명이며, 하급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3명이다. 가장 최근 사형이 선고된 것은 지난 1월 24일로, 법원은 강화 모녀 납치 사건의 피고인 4명 중 주범에게 1심에서 사형을 선고 했다.

이 밖에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과도하게 가린 이용자의 현금인출기 사용을 차단하는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이 기술은 현재 개발된 상태지만, 인출기 한 대 당 10만원에 달하는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상용화 되지 못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 동아일보 사진부 김재명 기자


▲임광희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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